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정의선 선언에 국내 IT기업 못 웃는 이유

성초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3 18:02

수정 2019.10.03 18:02

[기자수첩]정의선 선언에 국내 IT기업 못 웃는 이유
"현대차 때문에 정보기술(IT) 업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최근 한 글로벌 IT기업 임원에게 들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ICT(정보통신기술)기업보다 더 ICT기업다운 회사가 되겠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공언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모빌리티, 자율주행 기업 등 미래차 분야에서 꾸준히 협력 및 투자를 해왔던 현대차는 지난달 23일 단숨에 글로벌 IT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로 지위가 상향됐다. 미국의 모빌리티 전문기업 앱티브와 합작법인 설립을 결정하면서다.

현대차그룹이 합작법인에 투입하기로 한 현금만 16억달러(약 1조91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자동차 엔지니어링 서비스, 연구개발 역량, 지식재산권 공유 등을 합치면 투자는 총 20억달러(약 2조3900억원)로 확대된다. 이는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투자 규모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최대 해외투자 규모였던 3억달러에 비해 7배가량이나 많다.

그동안 자율주행에서 다소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현대차의 입지도 이번 투자결정으로 달라졌다. 앱티브는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 계열 부품사인 델파이 오토모티브에서 시작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다른 IT 경쟁사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지닌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차의 과감한 투자에 전문가들이 긍정적 평가를 쏟아내고 있지만 국내 IT기업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자동차 분야에서 IT투자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정작 국내 IT기업은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투자가 외면받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정부 규제가 지목된다. 자율주행 분야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과 교통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현행 도로교통법상 운전자 없이 도로를 달리면 불법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자율주행 준비지수(KPMG 보고서 기준)는 13위에 머물러 있다.
국내 IT기업들이 현대차의 대규모 해외투자 결정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정부의 규제에서 만들어진 것 아닌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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