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국익·교육에 부정적… '日 전범기업 관련 조례' 재의 요구 확산 [fn 패트롤]

장충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6 18:13

수정 2019.10.06 18:13

서울·부산·충북·강원·경기 등
日 수출규제 WTO에 제소한 상황
조례안이 판결에 악영향 미칠 우려
전국17개 광역의회 의원들이 지난 8월 14일 서울 일본대사관 평화비소녀상 앞에서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전국17개 광역의회 의원들이 지난 8월 14일 서울 일본대사관 평화비소녀상 앞에서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 조례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 수원=장충식 기자】 3·1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일본 전범 기업 관련 조례'에 대해 전국 각지에서 재의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악화된 한일 관계 속 전범 기업들에 대한 구매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국제사회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올바른 역사 교육과 더불어 일본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움직임이 자칫 수그러들지 않을지 지자체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6일 광역 지자체들에 따르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9월 30일 경기도의회에 '일본 전범 기업 기억 조례안'의 재의를 요구했다.
그는 "국익에 끼칠 부정적 영향과 교육적 측면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경기도의회는 지난 9월 11일 해당 조례안을 재석 의원 112명 출석에 기권 1명, 찬성 111명으로 가결했다.

해당 조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위원회가 발표한 284개 일본 전범 기업의 역사적 진실을 기억할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고, 일선 학교에서 자율적인 토론 등을 거쳐 전범 기업 제품에 대한 인식표 부착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이 교육감은 "재의 요구가 도교육청의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며 "국제사회가 가진 자유무역이라는 관점에서 이 조례가 자칫 오해의 여지가 있고 일본이 악용할 염려가 있어 재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부산 등 재의요구 잇따라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조례 재의 요구는 경기도 뿐만 아니라 이미 전국적으로 시작됐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조례를 제정한 충북은 지난 23일 충북도와 충북교육청이 재의를 요구하자 '보류'를 선택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조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국제 정세, 경제 상황, 국익 등을 종합 고려해 재의를 요구한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법제화하는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25일과 27일에는 부산시와 서울시 등에서 '일본 전범기업 제품 공공구매 제한에 관한 조례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제출됐다.

강원도 역시 같은 상황으로, 이들 모두 해당 조례가 법률에 위임 없이 특정 기업제품의 구매를 제한하고 있어 지방자치법 제22조를 위배할 소지가 있고, 국익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국시도의회의장 협의회는 지난 17일 서울에서 비공개 회동을 열고 관련 조례안이 발의됐거나 검토 단계에 있던 12개 의회에서 입법 절차를 보류하기로 했다.

■ WTO 자유무역 관점서 日악용 우려

이처럼 전국적으로 확산 됐던 일본 전범 기업 관련 조례에 대해 재의 요구가 이어지는 것은 정부의 요구도 한몫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교육부 등이 나서 해당 조례의 재검토를 요청해옴에 따라 국익 차원에서 지자체와 지방의회들도 이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전범 기업 관련 조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는데, 일부 지자체의 전범기업 관련 조례들이 이 판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전범 기업 조례 제정에 대해 WTO 위반 여부를 언급하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본정부 측은 "전범기업이라는 부적절하고 불합리한 주장에 기반해 특정 일본 기업을 부당하게 비난을 한 것이며, 일본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며 "WTO 협정을 비롯해 국제 룰에 어긋나지 않는지를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에 따라 좋은 취지와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일본 전범 기업 관련 조례가 오히려 일본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국 지자체들이 해당 조례의 추진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재의 요구를 한 것과 관련해 경기도교육청이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것이 아니고 국익을 고려하고, 교육적 측면들을 고려해서 재의를 요구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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