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폐지 줍는 노인, 허리 더 휜다...中정책에 수익 '반토막'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8 14:15

수정 2019.10.08 14:17

8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서 이모씨(68)가 주택가에서 수거한 폐지를 운반하고 있다/사진=이진혁 기자
8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서 이모씨(68)가 주택가에서 수거한 폐지를 운반하고 있다/사진=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작년보다 절반도 못 벌어요"
서울 강서구에서 폐지를 줍는 이모씨(68)는 길거리에 널려있는 폐지를 수거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씨가 하루 종일 폐지를 주으며 버는 돈은 만원 남짓. 이 조차 아침 6시30분 부터 12시간 가량 폐지를 주워 다닌 결과다. 그는 "작년만 해도 1kg에 70원은 받았는데 이젠 30원을 받는다"며 "나이가 젊었으면 이런 일을 안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중국의 폐지 수입 금지 정책에 따라 국내 폐지 가격이 대폭락했다. 이 때문에 폐지를 모아 하루를 연명하는 노인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수익이 줄어들어 재활용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폐지 가격 폭락, 지난해 반토막
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수도권 폐골판지 가격은 1kg당 66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1월 1kg당 136원에 비해 절반 넘게 떨어진 수준이다.

실제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넘기는 노인들이 받는 돈은 더 적다. 이날 고물상에서 거래되는 폐골판지 매입 가격은 1kg 당 30원 수준으로 노인들이 하루 평균 100kg 정도 줍는 것을 감안하면 폐지 수익은 3000원이 전부인 셈이다.

강서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A씨는 "폐지 가격을 잘 쳐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업자들 조차 남기는 돈이 줄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폐지 가격이 반토막 난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2017년 9월부터 환경 오염을 이유로 폐골판지를 포함해 24종의 쓰레기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물량 대다수 폐지를 수출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곧바로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가격 하락은 폐지를 줍는 노인에겐 '지옥'이었지만 골판지 업체에겐 '천국'과 같았다. 원재료인 폐지 가격이 낮아졌지만 인터넷 쇼핑몰의 성장으로 골판지가 재료인 택배 박스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골판지 업체 1위 기업 태림포장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배 가량 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산업 밸류체인 막바지에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 4월 환경부와 제지업계, 재활용업계는 폐지가격 안정화를 위해 MOU(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이행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폐지 줍는 노인 6만명 넘어
폐지 줍는 노인은 6만명을 넘어섰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폐지 줍는 65세 이상 성인은 2017년 기준 약 6만6000명, 100명 당 1명 꼴이다.

이들은 낮은 임금과 건강 악화 등으로 위험 상태에 빠졌다. 보건복지부의 '폐지수집 노인 실태에 관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폐지를 줍는 노인들 중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노인은 약 71%에 달한다.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시간당 평균 2200원으로 최저임금의 2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2013년 서울시는 '재활용 정거장'을 설립했다. 폐지수집 노인 등 생계가 어려운 주민을 자원관리사로 우선 선정해 지정된 수거장소를 관리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폐지 줍는 노인에 비해 선발하는 관리인 수가 턱없이 적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폐지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폐지 가격 붕괴로 노인들이 사라질 경우 폐지 수거를 지자체에서 전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이 경우 폐지 처리 비용이 급격히 올라가 제지회사 입장에서도 악영향이 끼칠 수 있다.
제지업체의 국내 폐지 의무 사용량을 늘리는 등 상생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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