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광장정치는 여당의 길이 아니다

집권당은 줄 與자를 쓰고
반대당엔 들 野자를 붙여
그 의미를 깊이 헤아리길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각종 의혹을 둘러싼 갈등이 거리로 분출하고 있다. 한글날인 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그의 사퇴 등을 요구하는 집회가 또 열렸다. 앞서 지난달 28일과 이달 5일 서초동 검찰청사 인근에서 검찰개혁 등을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대의정치는 시들고 '광장정치'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국회 울타리 너머 아스팔트 대치는 갈수록 거칠어질 낌새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문재인 정권 퇴진' '윤석열 총장 파면' 등 다른 진영의 극단적 주장들까지 범람했다. 여야는 서로 이런 목소리들이 동원됐다고 하지만, 피차 미심쩍은 주장이긴 마찬가지다. 분명한 건 민심이 심리적 내전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대의정치제도에서 여당의 '여'는 줄 여(與)자다. 영어로 집권당은 ruling party나 government party로 불린다. 정부와 한편으로 국정을 펼쳐 국민에게 뭔가를 주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집권여당의 본령이란 뜻이다. 반면 야당의 '야'는 들 야(野)자로, 영어론 'the oppsite party'(반대편 당)이다. '장외'는 대개 야당이 제도 안에서 한계가 있을 경우 입장을 천명하는 무대인 셈이다.

조국 사태로 이런 구분이 희미해졌다. 여당 의원들이 28일 서초동 촛불시위에 가세하면서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1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초동으로 향한다"고 예고한 뒤였다. "현 상황은 여당이 나서 장외에서 검찰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는 지적도 나왔다. 집권세력이 군중집회에 기대는 건 동서고금을 통해 드문 일이다. 나치 독일이나 구소련권 등 좌우를 막론한 전체주의 정권들이 애용했지만…. 보수 개혁 이론가 에드먼드 버크도 프랑스 혁명을 지켜본 뒤 "건설 없는 파괴의 과정"이라고 평가했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광장정치 '올인'은 '집권 야당'을 자임하는 격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누가 봐도 의혹 종합세트로 비치는 조 장관의 이미지다. 이를 광장에서 뒤집으려는 시도는 '둥근 네모'를 그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형용모순일 듯싶다. 여권이 광장의 불온한 기운에 기대선 잃을 게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벌써 범여권이 서초동 촛불 여론만 강조하자 광화문 집회의 규모가 커지는 역설만 빚었지 않나.

서초동이든, 광화문이든 동원됐을 법한 소수의 극단적 주장은 논외로 치자. 자발적으로 참여한 다수의 목소리는 '검찰개혁'과 '조국 사퇴'가 양대 화두다. 청와대와 여당이 둘 중 전자의 여론만 편식하면서 민심 이반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여당이 광장의 정치에 집착할수록 국정은 더 꼬인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경제·안보·교육 등 국정 전반에 성한 데가 없는 판에 장외 기싸움을 이어가겠다고? 그렇게 해 설혹 전투에서 이긴들 민생을 살리는 전장이 초토화된다면 여당으로선 자격미달이다.

며칠 전 윤석열 검찰총장은 특수부 축소와 피의자 공개소환 폐지 등 검찰개혁안을 내놨다.
현 정부 들어 특수부의 이른바 '적폐수사'에서 그 대상이 된 전임 정부 인사들이 모욕감을 못 견뎌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할 무렵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손놓고 있었던 사안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등 등 추가 검찰개혁 방안은 이미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져 있다. 그럼에도 조국만이 검찰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문 대통령에게 속삭이는 여권 인사가 있다면? 그야말로 우화 '벌거숭이 임금님'에 나오는 용렬한 신하를 자처하는 꼴일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