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홍콩반환협정 체결 직후부터 10여년의 기간이 이른바 홍콩누아르 전성시대라는 사실은 얄궂다. 성룡으로 대표되는 경쾌한 리듬의 무술영화를 밀어내고 음울한 정조의 갱영화가 쏟아져나온 것이 바로 이 시기다. 주윤발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웅본색'을 비롯해 '첩혈쌍웅' '아비정전' '천장지구' 같은 영화들이다. 특히 1990년 개봉한 오우삼 감독의 '첩혈가두'는 '우리 그냥 다 죽자'는 절망적 분위기를 가감없이 드러내는데, 이는 한 해 전 발생한 톈안먼사태에 대한 홍콩인들의 극도의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직후 나온 '무간도'나 2006년작 '상성(傷城)'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홍콩누아르의 부활이라는 찬사를 받은 '무간도'는 신분을 감추고 조폭과 경찰로 위장한 주인공들을 통해 정체성 혼란에 빠진 홍콩의 모습을 은유한다. 또 '무간도'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유위강·맥조휘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상성'은 '상처받은 도시'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이 반환 이후의 홍콩을 우울하게 스케치한다.
얼마 전 '영웅본색'의 주인공 주윤발이 홍콩 시위대에 합류해 화제를 모았다. 주윤발이 홍콩 정부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아니지만 영화 속 영웅이 스크린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홍콩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중(反中) 성향의 홍콩 매체들이 이런 주윤발을 '진정한 따거(맏형)'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지나친 일은 아닌 듯하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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