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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김정은 '백마쇼'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17 17:34

수정 2019.10.17 17:3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에서 백마를 탄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16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관련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김정은이 맨 앞에서 말을 타고 누이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조용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 측근들이 뒤따르는 장면도 보였다.

물론 그가 정상인 장군봉에 실제로 말을 타고 올랐을지는 의문이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수기를 보면 김정은은 18세 때부터 승마를 즐겼다. 하지만 눈 덮인 백두산은 걸어서 오르기에도 위험하다.
한 정치인은 과체중인 김정은의 백두산 승마 등정을 두고 "동물 학대"라고 비꼬았지만, 정상 부근에 말을 미리 옮겨두고 김정은은 차편으로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세습정권은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으로 선전해 왔다.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의 근거지라면서다. 김정은도 중요 결정을 앞두고 백두산을 찾아 '백두 혈통'의 적통임을 과시했다.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에도 인근 삼지연에 머물렀었다. 그간 북한 매체들이 생전의 김일성과 김정일이 백마 탄 모습도 자주 실었다. 그러나 '백두산 쇼'에 백마가 오브제로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의 북핵 제재를 버텨내기 위한 연출이란 지적도 나온다. 즉 '김정은=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란 상징 조작으로 흔들리는 민심을 달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노동신문이 "미국 등 적대 세력이 강요해 온 고통이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면서 "(김정은의 백마 등정을 계기로) 세상이 놀랄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한 데서도 읽히는 기류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계산이 당분간 대내적으로는 먹힐지 모르나 국제사회에서 주효하긴 어려워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마침 평양에서 열린 남북 간 월드컵 예선전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더비"라고 보도했다.
관중 한 명 없이 텅 빈 김일성경기장에 오버랩된 '백마 탄 김정은' 사진이 세계인들에게 북한이 비정상적 신념이 지배하는 '컬트 사회'임을 일깨웠을지도 모르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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