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피의사실 공표 금지, 진정성이 의심된다

1970년대 초 미국 정가와 사회를 뒤흔들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은 익명의 제보자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닉슨은 중국과의 국교 수립을 통해 냉전의 담장을 허물기 시작하는 등 그 나름의 외교적 성과를 냈지만 재임 기간 그다지 인기가 없는 대통령이었다. 닉슨의 측근들은 재선될 자신이 없었고, 상대당인 민주당 본부인 워터게이트빌딩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발각됐다.

사건은 당초 단순한 주거침입 정도로 치부될 뻔하며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익명의 제보자'를 통한 워싱턴포스트의 끈질긴 취재로 닉슨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내용의 녹음테이프가 밝혀지면서 닉슨은 하야했다.

훗날 이 제보자는 마크펠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 책임자가 피의 사실을 언론에 알려준 것이다.

이 사건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 과정의 외압 가능성과 부담을 줄여줬기에 닉슨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권력형 비리에 있어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국민의 알권리를 통해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검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상황이 철저히 보안사항이 된다면 언론의 견제기능이 무력화돼 '봐주기 수사'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검찰이 기소권을 독점한 상황에서 기소 전 수사상황에 대한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외부와 차단된다면 언론의 감시 기능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돌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현직 법무부 장관이 수사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지난달 느닷없이 피의사실 유포 금지를 여권과 법무부가 공론화하고 나선 것은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다. 새 공보준칙은 피의자 기소 전 수사상황이나 혐의사실 등에 관한 공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법무장관이 감찰을 지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논란이 일자 법무부는 장관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 이후부터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엄격히 제한하는 공보준칙 개선안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차기 법무부 장관이 이번처럼 범죄 의혹에 둘러싸인 경우에는 '깜깜이 수사'로 외압을 행사하더라도 국민은 사실상 알 길이 없게 된다.

종전 권력형 비리와의 형평성 논란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수사진행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브리핑할 당시 현재의 여권은 피의자 인권침해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국·영국 등 소위 법률 선진국들은 피의사실 공표죄를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미국은 연방검사 업무지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사건은 증인의 진술 등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사항은 제외하고 피의자의 혐의와 수사·체포 기관, 조사 기간 등을 밝힐 수 있도록 했다. 기소 때 발표 자료에는 '기소 범죄사실은 단순한 혐의에 불과하며 재판 확정 시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했다.
영국은 언론 보도가 사건의 공정한 수행을 저해하거나 편견을 주게 될 실질적 위험을 야기하는 경우에만 '법정모욕법'을 적용하고 있다.

무차별적 피의사실 흘리기의 폐단이 적잖은 만큼 어느 정도 제약은 필요하다. 다만 살아있는 권력으로 평가받는 조 전 장관 수사국면에서 이런 논의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