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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 "당신 괜찮나요"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1 16:49

수정 2019.10.21 16:49

젠더 이슈로 화제된 영화 '82년생 김지영'
주인공 정유미·공유
"시나리오 읽고 나자 지영이가 내게 스윽 다가왔다. 촬영하며 미처 몰랐던 육아 어려움도 알았다. 가족, 특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영화의 가치가 사회적 논란에 묻히지 않길 바란다." -정유미-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더욱 가슴이 짠했다.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나의 선택이다.
젠더 논란에 맞고 틀리다 말하기보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이해하고 싶다." -공유-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훈의 '칼의 노래'(2007),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9)에 이어 무려 10년만인 지난해 밀리언셀러에 오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출간 후 문학계를 넘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특히 여성들이 받는 불평등과 성차별을 다뤘다는 이유로 '페미 소설'로 찍혀, 일부 남성들의 강한 질타를 받았다.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제작을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주인공 정유미 역시 비난을 감당해야 했고, 공유는 "왜 굳이 그 작품을 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 공유, 정유미 "가족 생각 많이 나"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큰 서사 없이 신문기사와 에피소드가 나열된 원작과 달리 원작의 미덕은 지키면서 담담하고 사려 깊게 '경단녀' 김지영(정유미)을 둘러싼 가족 이야기로 우리 시대 여성의 삶과 사회 풍경을 담는다. 동시에 임신과 출산으로 삶이 180도 달라진 한 30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이다. 극중 지영은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나 때로 어딘가에 갇힌 듯 답답하다. 남편 대현(공유)은 언젠가부터 자신과 시부모에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는 아내가 걱정돼 병원을 찾는다.

영화는 지영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고 자란 여성이라면 한번쯤 겪는 일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 문화는 때로는 공기처럼 자연스럽지만 누군가 가부장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내로 가부장제의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이고 대체로 평온한 일상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지영의 친정보다 시댁이 좀 더 보수적이지만, 대현은 '요즘 남편'답게 가사 일에 적극적인 편이다. 공유가 촬영장에서 "대현이 너무 스위트한 거 아니냐"고 감독에게 문제 제기를 했을 정도. 영화는 지영이 앓는 마음의 병과 '경단녀'가 된 현실에 대해 누구를 특정해 비난하지 않는다. 지영의 일상과 가족관계, 주변 풍경을 담담히 보여줌으로써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지 않고 영화의 메시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공유는 "화목한 가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라 더 무섭고, 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공유는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유난히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단다. "엄마, 아버지, 누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난 어릴 적에 어떻게 자랐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아버지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고 밝힌 공유는 "그렇지만 가부장적이진 않았다. 누나도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평등한 분위기에서 자랐다"고 부연했다. "저보다 더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친구도 있고, 반대인 친구도 있더라. 어떻게 자랐는지에 따라 이 영화를 보는 시선도 다를 것 같다."

■ 공유 "젠더 이슈 이해하려고 노력"

남동생과 단둘이 자란 정유미도 "딸이라서 차별받지 않았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젠더 이슈는 개의치 않았다는 정유미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캐릭터가) 나에게 스윽 다가왔다. 지영의 엄마가 어릴 적 왜 교사의 꿈을 접었는지 말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쿵했다"고 했다. 미혼인 정유미는 "감독님이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촬영하는 몇 시간 동안 아기를 안았을 뿐인데 정말 허리가 아팠다"고 미처 몰랐던 육아의 어려움도 언급했다. 공유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족, 특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단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감사했다. 부모에게 무심한 나의 태도를 많이 반성했다."

극 후반부 지영은 자신을 '맘충' 취급하는 뭇 남녀를 향해 "왜 나에 대해 모르면서 상처를 주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공유는 이 장면을 언급하며 "통쾌했다"며 "개인이 무시되는 상황이 한 인간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늘 생각하기에 지영의 입을 빌어 한 이 대사가 제게는 위로가 됐다."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젠더 이슈와 관련해서는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공유는 "다양한 삶을 연기하는 배우는 중립적인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고 함부로 말하기보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이해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유는 논쟁과 별개로 이 작품에 출연하는데 '용기' 따위는 필요 없었단다. "왜 사람들이 '용기' 운운하는지 납득이 안됐다. 시나리오에 공감했고, 대현을 연기하고 싶어 출연했을 뿐이다" 여성 중심 영화라 남자 주연은 돋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하자 "영화가 좋으면 배역의 비중은 상관없다"고 했다. "장르나 배역의 비중에 상관없이 우리의 모습, 내 모습이 보이는 영화가 좋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 선택에 내 취향이 뚜렷해진다."

정유미는 젠더 이슈에 이 영화의 가치가 묻히지 않길 바랐다. 때로 여론의 전쟁터가 되는 포털사이트에서 이 영화의 기대 지수는 '글쎄요'가 '보고 싶어요'에 비해 많다.
젠더 이슈가 '82년생 김지영'의 흥행에 영향을 끼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들을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원작자의 말대로 "소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영화"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23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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