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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사 '신용등급 선심'… 美 기업 눈덩이 부채 '시한폭탄'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1 18:09

수정 2019.10.22 14:18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 가운데
절반이 'BBB' 범주에 속해
지난 10년간 3배 넘게 급증
막대한 투자금, 회사채로 몰려
美 비금융기업 부채 규모
2004년 이후 최대 수준
신평사 '신용등급 선심'… 美 기업 눈덩이 부채 '시한폭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 양대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회사채 신용등급을 지나치게 후하게 매겨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0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경기순환상 필연적인 경기하강기에 회사채 부담까지 겹쳐지며 경기하강 폭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신용평가사들이 등급 산정요인으로 제시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는데도 후한 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부채 외에 다른 요인을 감안해 등급을 높게 책정하는 사례 등 다양한 경우의수가 회사채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을 부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 자료에 따르면 투자등급 최하위 3개 등급인 BBB+, BBB, BBB- 등 이른바 'BBB' 범주에 속하는 회사채 규모는 지난 10년 동안 3배 넘게 폭증했다. 금액으로는 3조700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 가운데 약 절반이 BBB 범주에 속해 있다.
2009년 38%에서 크게 늘었다.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러버메이드'를 만드는 뉴웰브랜즈의 사례에서 두드러진다.

무디스와 S&P는 뉴웰브랜즈가 조만간 막대한 부채규모를 줄이게 될 것이라면서 BBB 범주에 묶어두고 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들의 이런 '기대'는 전에도 계속해서 무산된 바 있다. 2015년 뉴웰브랜즈가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나서면서 부채규모가 4배 증가했을 당시부터 S&P와 무디스는 매년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 왔다.

신용평가사들은 뉴웰브랜즈 외에도 케첩으로 유명한 크래프트 하인즈, 캠벨 수프 등 차입규모가 엄청난 업체들에 후한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토토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그레그 헨델은 "이들 업체가 지난 20여년간 같은 신용등급에서 얼마나 엄청나게 레버리지를 높여왔는지를 들여다보면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라면서 "분명 일종의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신용평가사들의 '선심'은 급격한 기업 부채에도 일조하고 있다.

초저금리 속에 수익에 목마른 투자자들을 수익성이 높으면서도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는 '투자등급' 회사채로 몰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BBB-에서 한 단계만 떨어지면 BB+로 투기등급이다. 투자자들이 위험부담 때문에 매수를 꺼리고, 기관투자가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규정상 사들일 수 없는 채권이어서 자금조달 비용이 등급 한 단계 차이로 급증하게 된다.

신용평가사들이 투기등급 바로 위 BBB 범주에 투자등급 회사채 절반을 몰아넣으면서 투자자들의 돈이 회사채로 몰리게 하고, 경제상황이 악화하면 크게 위험해질 수도 있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기업에는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 비금융기업들의 부채규모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약 60% 급증한 10조달러에 육박한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기업 수익 대비 부채비율인 레버리지는 비금융사 투자등급 회사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올 2·4분기 2004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무디스와 S&P는 비록 레버리지가 상승하고는 있지만 현금흐름 대비 부채는 개선되는 등 다른 요인들은 양호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고, 전문가들의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투자자들도 더 이상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을 막연히 신뢰하고 있지만은 않아 BBB- 등급 회사채 가운데 1000억달러어치 이상이 정크본드와 같은 수준의 수익률에 거래되고 있다.

애널리스트들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시 모간스탠리 미국 신용전략 책임자인 애덤 리치먼드는 SEC 청문회에서 레버리지만 따지면 투자등급 자격 미달인 기업이 널려 있다면서 언젠가는 닥치게 될 경기둔화가 현실화할 경우 신용평가사들의 "등급 하향이 봇물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JP모간도 SE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

IMF도 경고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달초 연설에서 경기하강이 본격화면 8개 주요국 총 부채의 40%에 육박하는 회사채 19조달러어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면서 "이는 금융위기 당시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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