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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최후통첩'… 對南 기대 접고 금강산 독자개발 [남북관계 먹구름]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3 17:50

수정 2019.10.23 17:50

"금강산사업 남한 의존은 잘못"
남측에 전향적 입장 전환 압박
김정일까지 비난하며 강경
대화 재개해도 관계개선 의문
"남측 시설 싹 들어내라"/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2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금강펜션타운, 구룡마을, 온천빌리지, 가족호텔, 제2온정각, 고성항회집, 고성항골프장, 고성항출입사무소 등 남조선측에서 건설한 대상들과 삼일포와 해금강, 구룡연 일대를 돌아보며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에 대해 엄하게 지적했다"고 보도했다.뉴시스
"남측 시설 싹 들어내라"/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했다고 2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문화회관, 금강산호텔, 금강산옥류관, 금강펜션타운, 구룡마을, 온천빌리지, 가족호텔, 제2온정각, 고성항회집, 고성항골프장, 고성항출입사무소 등 남조선측에서 건설한 대상들과 삼일포와 해금강, 구룡연 일대를 돌아보며 자연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에 대해 엄하게 지적했다"고 보도했다.뉴시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금강산의 남측시설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아직 제대로 꽃도 피지 못한 금강산관광사업이 뿌리째 뽑힐 위기에 처했다.

현대그룹 측은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반응이지만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 측에 사업을 재개하든 철수하든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교착상태가 지속 중인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우리의 역할을 압박하는 일종의 '지렛대 전략'이라는 관측도 있다.

■김정은의 노림수 뭔가

23일 김 위원장은 최근 금강산관광지구를 방문해 "과거 남한에서 지은 건물은 민족성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고, 가설건물을 방불케 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해당 건물을 남측과 협의해 모두 철거하고 북한 식으로 다시 짓도록 지시했다.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건물은 주로 정부와 한국관광공사, 현대아산이 소유하고 있다. 이산가족면회소는 정부, 금강산온천·문화회관·온정각면세점, 해금강호텔은 관광공사 소유다. 현대아산측 건물은 온정각, 옥류관, 온천빌리지, 구룡마을, 금강빌리지, 연유공급소, 부두시설, 금강산병원 등 9개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지난 1998년 11월 18일 이산가족 등 826명을 태운 관광선 금강호가 동해항을 출발해 북한 장전항에 입항하며 시작됐다. 하지만 관광객 200만명 돌파를 앞둔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지금까지 전면 중단된 상태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설이 11년 동안 관광사업이 중단되며 제대로 개보수도 되지 않은 상태다.

■대남 압박 강도 최고조

김 위원장은 금강산관광지구총개발계획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금강산관광지구 일대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마식령스키장이 하나로 연결된 문화관광지구로 조성하도록 했다. 사실상 방치된 금강산관광사업을 북한 독자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사다.

정부는 김 위원장이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여'라고 발언한 것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에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그리고 남북 합의의 정신, 또 금강산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협의해나갈 계획"이라며 "일단 지금은 북측의 의도라든지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국민의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대처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향후 금강산 문제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북측은 남측이 금강산에 건설한 시설들의 신속한 철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금강산 문제로 남북대화가 재개되더라도 그것이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해빙으로 연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정부의 대응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정진 경남대 교수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북한식으로 바꿔 금강산관광사업을 하겠다는 방침과, 그게 싫으면 남측이 좀 더 전향적으로 움직이라는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대남 압박과 노후시설 개보수 등을 모두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한 발언에 대해 "남측에 기대는 것처럼 사업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관계 재정립을 원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결정에 대해 유일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이 새로운 지침을 내린 셈이다. 또 향후 금강산관광 관련 협상이 진행되면 북측이 기존보다 유리한 조건을 요구할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북한은 유엔 제재하에서도 관광에서만큼은 민족 내부의 문제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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