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죽은 강아지를 위해 경조휴가를 낸다면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4 16:41

수정 2019.10.24 18:39

[기자수첩]죽은 강아지를 위해 경조휴가를 낸다면
아저씨는 엉엉 울 것만 같았다. 대낮 카페에서 우연히 옆 사람 대화를 들었다. 마주보고 앉은 두 중년 남자 중 한쪽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10년 넘게 기르던 개가 죽었단다. 아저씨는 개를 품에 안던 감촉이 자꾸만 생각나는지 팔을 동그랗게 모았다. 건너편에 앉은 쪽은 눈물을 흘리는 친구를 보고 어쩔 줄 몰라 머그컵만 매만졌다.
사실 좀 황당하고 웃겼다.

다 큰 어른이 개 때문에 훌쩍거리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고양이를 다섯 달 키워보니 이제 알겠다. 왜 아저씨가 앞에 놓인 차가 식어가도록 눈물을 멈출 수 없던지를. 매일 저녁 퇴근하면 문 앞에 나와 있는 고양이. 한밤중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고양이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 가슴에 구덩이가 생긴다. 아저씨는 아마 정말 울고 싶었을 거다.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말이 바뀌는 시대다. KB금융그룹 '2018년 반려동물보고서'를 보면 작년 12월 기준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과거 반려동물을 길렀던 가구를 포함하면 반려동물 양육 경험이 있는 가구는 절반을 넘는다. 반려동물 양육가구 10명 중 8명 이상은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말에 동의했다.

반려동물이 가족이라면 경조휴가 사용이 가능할까. 아직까지 공감을 받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2017년 이탈리아에서 로마 사피엔차대학 교직원이 반려견 간호를 이유로 유급휴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소송을 내 승소했다.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미국과 일본 회사 중 가족상처럼 휴가를 주는 곳도 있다.

반려동물 경조휴가 기사 댓글에는 과격한 목소리가 많다. 고작 개 때문에 회사에 휴가 달라는 건 그야말로 개판이라는 거다. 고백하건대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면 똑같이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때론 슬픔의 이유보다 슬픔 그 자체가 중요한 것만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자세다.

최근 밤낮없이 회사 생활을 하던 친구가 퇴사했다. 회사를 관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잡지 제작이었다.
죽은 강아지를 추억하는 내용을 담았다. 제대로 강아지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나 보다.
친구가 하루라도 애도의 시간에 충실했다면 슬픔은 조금 옅어지지 않았을까. 친구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강아지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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