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불과 20여분의 짧은 면담으로 한·일 관계가 술술 풀릴 것으로 낙관하긴 어렵다.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아베 정부의 대한 수출규제 조치와 문재인정부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꼬일 대로 꼬인 상태여서다. 그러나 두 총리가 "양국이 중요한 이웃 국가로서 한·일 관계의 어려운 상태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조세영 외교부 1차관)고 했다니, 다행스럽다. 이 총리가 이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을 앞으로도 존중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등 돌린 양국이 다시 소통할 레일을 깔았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정상 간 후속 대화가 중요하다. 이날 이 총리가 아베에게 건넨 문 대통령의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강제징용 판결이 도화선이 돼 양국 간 감정적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친서는 그 자체로 관계 개선의 시그널이다. 문 대통령이 내민 손을 가까운 시일 내에 아베 총리가 맞잡기를 바란다.
물론 두 정상이 만나더라도 강제징용 배상, 수출규제, 지소미아 파기 등 현안을 일거에 해결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얽매여 미래를 놓치면 피차 큰 손실이다. 이미 양국 기업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고 있다. 다음 달 지소미아가 종료되고 연내에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 현금화가 진행되면 양국 관계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국 정부가 취한 갈등해소 이니셔티브에 양국의 불행한 과거사에 큰 책임이 있는 일본이 화답할 차례다. 동북아의 경제·안보 지형이 요동치는 지금 양국 모두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실용적 자세가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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