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눈 감고 귀 닫은 '대가'

정용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6 09:00

수정 2019.10.26 09:00

[기자수첩] 눈 감고 귀 닫은 '대가'

최근 부산 영도에서 해양수산부와 부산시가 주최하는 ‘부산권 해양공간관리계획안‘ 수립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해양수산부가 부산까지 내려와 공청회를 여는 것도 흔하지 않을뿐더러 정부가 해양공간을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 참석했다.

공청회장을 들어서자 다소 한산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길목까지 사람들이 들어차 앉은 자리도 없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직감적으로 느낀 행사장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주최자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했고, 청중들은 일단 들어보자는 것 마냥 참을성 있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날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정부가 부산 앞바다에 9개 용도구역(안)을 수립한 날이다. 같은 날 시의회에서는 관련 지역 위원회·협의회 조례를 원안 처리했다. 바로 전날에는 용신께 어민들의 안전과 만선을 빌기 위해 부산공동어시장에서 가을 풍어제가 열리기도 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대부분 부산·경남에서 모인 어민들이었다. 어민들은 해상공간관리계획-용도 구역 9개 가운데 '에너지'가 결국은 기장 앞바다에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세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고 반발했다. 거기다 부산시나 기장군 어디에서도 공청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이의 제기했다. 이들은 공청회 개최 이틀 전에야 알고 부랴부랴 버스를 대절해 영도까지 왔다고 했다. 또 자신들만 쏙 빠진 채 '지역협의회'가 구성됐다는 것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민들은 손을 들며 말했다. 가방끈이 긴 박사님은 10t짜리 배를 타고 70마일 나가서 파도 속에 조업해 본 적이 있냐고, 안 그래도 전국 최저인 조업 구역이 더 좁아질 거라고, 부산 앞바다는 거의가 산란장인데 결국은 해상풍력발전기가 해양 생태계를 망칠 것이라고.

때론 눈물로 호소했다. 오죽하면 돈을 들여 풍어제를 지냈겠냐고, 먹고사는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더 어민들을 울리려 하냐고 말했다. 그 자리에 앉은 이 그 누구도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양공간관리계획이 결국 해상풍력발전기로 이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또 해상풍력발전기가 부산에 꼭 필요하다는 타당성도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이번에도 행정당국은 추진 과정에서 대립과 반목을 피하지 못했다. 지역주민 수용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업은 장기적으로 갈등의 고리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시는 이제라도 이해당사자가 정말 누군지, 행정편의로만 밀어붙이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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