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법관의 판결과 훈시

미국 연방법관 행동강령(Code of Conduct for U.S. Judges) 3A(3)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재판 과정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공정하게 잘 들어야 하는 법관의 의무는 법원의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무와 배치되지 않는다." "모든 재판 당사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관의 의무는 당사자를 괴롭게 하거나 합리적인 관점에서 법관이 편견 혹은 편향성을 가진 것으로 해석될 만한 의견 표명이나 행동을 회피해야 할 의무를 포함한다." '행동강령'은 법관의 업무준칙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중 인용한 부분은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듣는 일은 법관의 의무(duty to hear)'임을 밝히고 있다. 듣는 것이 법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며, 충분히 듣는 게 오히려 신속한 사건 처리방법임을 암시한다. 법관은 당사자를 설득하는 직업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직업이라는 동서고금의 원리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불필요한 의견표명을 피해야 할 법관의 의무 역시 비슷하다. 재판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말은 법관이 특정한 예단을 가졌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조계의 금언이 뜻하는 바도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관의 법정 훈시가 종종 세인의 입길에 오르곤 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도 그런 예다. 재판부는 51세의 이건희 회장과 대비한 "51세 이재용의 혁신은 무엇인가" 등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블룸버그는 판사가 이 부회장에게 '강의(lecture)'를 했다고 표현했지만 '훈수질'이라고 번역한 언론도 있다. 재판부의 발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면 별도 훈시가 아닌 판결문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발언이다. '혁신' '회장의 역할' 등이 재판상 필요한 발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누구보다 혁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법관이 아닌 기업인 자신일 것이다.

판단하는 일, 특히 형사재판에서 유무죄 판단은 두려운 과업이다. 심판은 신의 일이라거나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말도 그런 표현이다. 판사를 '판단하는 사람(判士)'이 아닌, '판단하는 일(判事)'로 표현하는 이유이다. 법관 경력이 오랠수록 재판의 엄중함을 자각할 것이다. 박우동 전 대법관은 형사재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실인 쪽과 진실이 아닌 쪽을 저울질하면서 고민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했다.('판사실에서 법정까지') 닐 고서치 미국 연방대법관은 후보 지명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판사들이 법복을 입는다고 그것이 우리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법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독립적이며,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에 승복한다."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실제로 당사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수긍하는 판결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승복하지 않을 도리는 없지만 고서치 대법관의 말처럼 법복을 입고 있다고 법관이 현명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재판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재판부도 아직 결론을 몰라야 한다. 국민은 솔로몬 재판처럼 법관이 스스로 진실을 발견해내는 전설적인 판결을 기대하는 게 아니다.
법관이 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며,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정치권력이든 여론이든 압력에서 독립해 내린 용기 있는 판결을 보고 싶어한다.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 재판 외의 불필요한 언급을 피하는 것은 그런 판결을 위한 첫걸음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