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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정경심 얼굴 공개 둘러싼 공인 논란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31 17:44

수정 2019.10.31 17:44

[여의도에서] 정경심 얼굴 공개 둘러싼 공인 논란
10월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법원에 출석할 당시 많은 언론이 처음으로 포토라인에 선 그의 얼굴을 담기 위해 모여들었다.

언론사들은 정 교수의 사진을 그대로 내보낼지를 놓고 혼란에 빠졌다. 본지는 정 교수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전직 장관의 부인으로, 이른바 '조국 사태'를 촉발한 장본인이긴 하지만 공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과거 국정농단 사건 당시 민간인 신분에 불과했던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던 사례와의 형평성 문제, 정 교수가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만큼 국민의 알 권리가 중요하다는 등을 이유로 그의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를 말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보도준칙'에 따르면 언론은 공인이 아닌 개인의 얼굴, 성명 등 신상정보와 사생활을 공개할 때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인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사전에서는 '공인(公人)'을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말한다. 하지만 공적인 일이란 개념 자체가 워낙 모호한 데다 법전에 정의된 규정도 아니어서 기자들도 이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인 여부는 해당 인물에 대한 초상권 문제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원 판례를 참고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해석이다. 법원은 공인과 사인의 구별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사안마다 보도의 대상이 된 인물과 보도 내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인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보도의 대상이 된 인물이 공인인지 아닌지는 판결을 받아보기 전에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일선 판사들의 대체적 견해다. 현재로서는 법원 판례상 구축된 직업군을 통해 공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법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인 셈이다.

법원이 공인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도덕성 청렴 및 업무처리 등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 고위공직자다. 다만 판례는 고위공직자의 범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학설은 공직자윤리법에서 정한 등록의무자를 고위공직자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아울러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유명한 사람도 공인으로 보고 있다.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 뛰어난 학자나 기업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그간 판결에서 고위공무원, 정부기관의 장, 정치인, 대학 총장, 전 청와대 비서관, 국회의원 후보자, 방송인, 재벌그룹 부회장, 방송사 국장, 언론사 대표, 연예인, 대통령의 조카사위 등을 공인으로 인정해 왔다. 이에 반해 방송사의 최대주주, 전직 구의회 부의장, 은퇴한 연예인, 환경운동가 등은 공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판례에도 불구하고 과연 얼마나 유명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은 바가 없어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늦었지만 학계와 언론계 등을 중심으로 공인의 유형을 더욱 세분화하고, 지위나 역할에 따라 차별적으로 취급해야 할지 등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적인 인물의 판단에 대해 아무런 기준이 없다면 언론기관의 범죄 보도를 크게 위축시켜 범죄의 재발방지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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