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로 감지해 걷고 뛰는 VR 기기인데…'모터' 없으면 놀이기구 아니다?

박지상 리앤팍스 본부장이 트레드밀형 VR 시뮬레이터 '버툭스옴니'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VR 체험존 'EVR그라운드'에서 버툭스옴니로 VR 게임을 즐기는 모습(리앤팍스 제공)© 뉴스1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제6차 ICT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원회 개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2019.9.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지난해 리앤팍스에서 개최한 VR e스포츠 대회 '옴니 아레나 챔피언십'의 모습(리앤팍스 제공)© 뉴스1


[편집자주]검찰의 '타다' 기소로 국내 스타트업 업계가 여전히 높은 규제 장벽을 실감하며 정부와 국회에 "숨통을 틔워 달라"고 호소한다. 그동안 정부는 끊임없이 신산업을 위한 '규제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과 산업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같은 규제개혁의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는 게 바라 올해부터 시행된 '규제샌드박스' 제도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존 시장에 없던 창의적·혁신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려 할 때 기존 규제를 적용하지 않거나 유예해 시장에서 먼저 테스트 또는 출시를 해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규제샌드박스는 혁신산업과 전통산업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원칙상 금지되지 않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뉴스1>은 대표적인 융합 신산업인 가상현실(VR) 분야에서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발견한 기업 현장을 찾아 규제해법을 들어봤다.

(서울=뉴스1) 남도영 기자 = 지난달 23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가상현실(VR) 체험 매장 'EVR그라운드'. 전용 신발을 신고 허리에 안전장비를 착용한 후 VR 시뮬레이터 '버툭스옴니'에 올랐다. 게임이 시작되고 사방팔방 모여드는 좀비를 피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자 10분도 되지 않아 몸에 땀이 흥건하다.

미국 VR 전문기업 버툭스사가 개발한 버툭스옴니는 지난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처럼 사용자가 걷거나 뛰면 가상현실 속 캐릭터도 똑같이 움직이게 해준다. 사용자는 360도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고, 뒤로 걷는 동작 등도 재현한다.

버툭스옴니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 리앤팍스의 박지상 본부장은 "몰입감이 높아 게임은 물론이고 안전·재난 훈련이나 교육 등 특수목적용 VR에도 최적화 돼 있다"며 "실제 몸을 움직이며 플레이하는 'VR e스포츠'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에서 움직이는데 '모터' 없다고 인증 못받아



리앤팍스는 지난해 6월 이곳 첫번째 직영점을 연 이후 사업 확장을 위해 놀이공원이나 쇼핑몰, 극장 등에 소규모 매장을 설치하는 협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던 중 담당자에게 '유기기구'로 안전성 승인을 받아야 납품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기기구(또는 유기시설)은 관광진흥법상 '이용자에게 재미, 즐거움, 스릴을 제공할 목적으로 제작된 장치 또는 시설물'을 말한다. 현행법상 유원시설업을 위해 설치한 유기기구는 안전성검사를 받도록 돼있다.

리앤팍스는 안전성검사를 받기 위해 시험인증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을 찾았으나 이번엔 시행령상 구동부, 즉 '모터'가 없어 유기기구로 볼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도 문의를 했으나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박 본부장은 "(버툭스옴니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해 가상현실에 적용하는 진화된 방식인데 현행 유기기구는 모터로 움직이는 기구만 정의하고 있다"며 "납품처에선 내규상 유기기구 안전성검사 확인증을 요구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규제샌드박스로 '적극행정' 수혜…신사업 본격화

생각지 못한 규제에 가로막힌 리앤팍스는 KTC 담당자의 권유로 '규제샌드박스'의 문을 두드렸다. 회사측은 법령의 모호함이 있다는 법률자문을 받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에 임시허가를 신청했다.

과기정통부, 문체부 등 관계 부처 담당자와 전문기관, 외부의원들이 모두 모인 사전검토위원회에선 2시간여 격론 끝에 '규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문체부는 버툭스옴니를 관광진흥법상 유기기구로 분류하긴 어렵지만 게임산업법상 '청소년게임제공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지난 9월26일 열린 '제6차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는 리앤팍스에 대해 납품처에서 유기기구 안전성검사 확인증을 요구하면 문체부에서 문제가 없다는 공문을 내려주라는 '적극행정' 권고가 내려졌다. 또 KTC에도 '자가의뢰 시험검사'를 실시해 안전성을 담보할 시험성적서를 발급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위원회는 "적극행정 조치로 동 기기의 시장 진출이 활성화되면 e스포츠, 군사훈련, 게임, 재활치료 등 다양한 'VR 러닝머신' 기반의 부가 콘텐츠 개발‧출시도 본격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법적인 부분을 정부가 정리해 준 덕에 사업을 확장하는 데 걸림돌이 사라진 리앤팍스는 현재 계획했던 매장 입점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회사 측은 게임을 발판 삼아 실제 훈련이 어려운 대형병원의 소방대피훈련 등 특수목적용 VR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혁신에 쓸 시간도, 인력도 모자라…규제 간소화 '절실'

대기업에서 나와 친형과 함께 VR 사업을 시작한 박 본부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스타트업들이 처한 규제 환경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박 본부장은 "중소기업은 경영능력보단 법률문제 등 외부 리스크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특히 기존 법률 상 해석이 어려운 사업의 경우 사장되는 경우가 많이 '처음 시작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VR 시설 역시 아직 규정하는 법 체계가 아직 없다보니 기존 PC방에 맞춰진 규제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라며 "법을 지키고 싶어도 없어서 못지키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불확실성이 크다보니 규모가 영세한 콘텐츠 제작사들이 VR 콘텐츠 제작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며 "콘텐츠가 부족해 플랫폼도 확산되지 않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규제샌드박스가 이런 법적 리스크 없이 사업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해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신청 이전에는 솔직히 반신반의 했지만 공무원들이 업체 고민을 밀착해서 들어주고 열의를 갖고 해소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정부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세금 내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인원이 많지 않은 스타트업은 규제샌드박스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조차 벅찬 환경"이라며 "혁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규제에 대한 행정은 최대한 간소화 해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