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이 공연] 로마 비극? 로마 희극! 한국판 '로마 비극'을 기대하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3 15:40

수정 2019.11.13 15:40

이보 반 호브 대표작, 명불허전 작품
[이 공연] 로마 비극? 로마 희극! 한국판 '로마 비극'을 기대하며

[이 공연] 로마 비극? 로마 희극! 한국판 '로마 비극'을 기대하며

[이 공연] 로마 비극? 로마 희극! 한국판 '로마 비극'을 기대하며

(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출처=뉴시스/NEWSIS)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엮어 만든 5시간 30분짜리 대작 ‘로마 비극’이 지난 11월 8~10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벨기에 출신의 유명 연출가, 이보 반 호브는 “무릇 고전의 재해석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듯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작품 속에서 배우들은 고대 로마의 시·공간적 배경을 벗어나 현대적 무대에서 양복을 입고 등장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처럼 모사를 꾸미거나 TV 인터뷰를 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은 관객에게 공감을 주며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고전의 재해석, 현대화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또한 ‘로마 비극’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며 연극의 다양한 금기를 파괴한다. 러닝 타임이 무려 5시간 45분에 달하는데 많은 관객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감상했다. 공연장 에티켓을 깨도 된다는 관극 방침 덕분이다. 음식 섭취 가능, 자리 이동 가능, 휴대폰 사용 가능, 심지어 무대 위로 올라가 배우 옆에서 관극 가능. 이 모든 자유는 이보 반 호브가 그린 ‘로마 비극의 큰 그림’ 중 하나다.

휴식 없이 논스톱으로 공연되는 이 작품은 24시간, 365일 우리가 먹고 자고 노는 사이에도 세계 정치는 계속 돌아간다는 현실 세계를 반영한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스크린뿐만 아니라 곳곳에 배치된 수십개의 TV 화면과 이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는 배우들의 모습은 상징적이다.

작품이 시작되면 카메라맨이 무대 위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하고 이를 실시간 중계하는데, 관객은 무심코 무대 위 배우들이 아니라 스크린 속 그들을 보게 된다. 또한 ‘로마 비극’에서 관객은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예상보다 무대 위로 올라간 관객이 많았는데, 이들의 모습은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 속의 배우들과 함께 포착되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비극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아이러니한 이 상황은 그 자체로 현실 정치를 담으려한 연극의 큰 그림에 자연히 녹아든다. 줄리어스 시저의 아들 옥타비우스 시저를 여배우가 연기하고, 연륜이 많아 보이는 여배우가 ‘세기의 미인’ 클레오파트라를 소화하는 식으로 이 작품은 캐스팅에서도 기존 상식을 깬다.

연극은 귀를 찌르는 듯한 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로마공화정 시기, 수많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영웅으로 평가받는 군인, ‘카이우스 마르티우스 코리올라누스’가 볼스키족의 코리올라이성을 정복한 후 ‘코리올라누스’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어 카리스마 넘쳐 큰 인기를 누리며 정치적인 힘을 키운 줄리어스 시저가 황제로 추대되나, 그에게 권력이 집중돼 공화정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한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등이 독재를 막고자 시저의 암살을 기도한다. 시저의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이야기다.

마지막은 시저 암살 이후 정계의 중심에 서게 되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러브스토리가 중심인 ‘안토니와 클레오파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관객은 극중 다양한 인격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과 그들의 어머니, 아내, 형제 그리고 그들의 명분, 싸움, 죽음을 수차례 목도한다. 전쟁 역시 수차례 일어난다.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나 아집, 자신의 신념이나 개인적 야심, 그리고 명예를 압도한 사랑 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와 친구를 등지고, 속고 속이면서 싸우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돼 피 흘린다.

이보 반 호브는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그는 연출가의 노트에서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답으로 내놓는다. “정치란 어떤 명분을 위한 투쟁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기에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치적이 될 수 없다. 정치와 진실은 언제나 상충한다.”

그는 또한 “사람이 얼마나 잘 변하고 유연하며 또한 잘 속아 넘어가는지,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가족이나 생활과 동떨어질 수 없으며 공익도 사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로마 비극’은 한 편의 연극을 넘어 정치에 관한 대규모 컨퍼런스의 장으로 거듭난다. 관객은 배우들과 함께 다양한 정치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전쟁으로 시작한 이 연극은 그렇게 격전의 장을 거쳐 세기의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클레오파트라는 비록 연인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나 그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굳이 이 연극에서 목도한 여러 영웅들의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개인적으로는 안토니아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다.

세상의 온갖 전쟁에 맞설 수 있는 가치는 너무 뻔하지만, 그래도 사랑이 아닐까. 인간애를 바탕에 둔 정치가 늘 승리하지 않겠지만, 정치의 기본 덕목이 인간애이길 바라본다.
더불어 한국판 '로마 비극'도 만들어지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