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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불통 때문에 빛바랜 ‘상법시행령 개정’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8 17:30

수정 2019.11.18 17:30

[기자수첩]불통 때문에 빛바랜 ‘상법시행령 개정’
"20년째 매년 주주총회를 가장 먼저 열어온 넥센타이어에서 문의전화가 왔다. 상법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져서 이번에는 아무래도 1등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얘기였다."

최근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법무부의 상법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상장사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상장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사외이사 기준을 해당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6년 이상 또는 계열회사 포함 9년 이상인 자의 경우 재직을 금지한 것, 주총 소집시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등을 함께 제공할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가장 피해받는 곳은 중견·중소기업이라는 것이 상장협의 전언이다.


사외이사 기간 제한으로 내년에 새로 사외이사를 뽑아야 하는 상장사가 566개에 달하고, 이 가운데 중견·중소기업의 비중이 87.3%나 된다. 주총에 앞서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를 미리 작성해야 하는 것도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겐 부담이다. 특히 배당을 해야 하는 기업은 시간이 더 촉박하다. 12월 결산법인의 배당기일이 연말에 몰려 있는 데다 현행 상법상 배당은 기준일로부터 3개월 내인 3월 말까지 확정하게 돼 있어 그때까지 정기주총 개최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부실감사 우려는 덤이다. 통상 외부감사인이 규모가 큰 대기업부터 감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중견·중소기업은 뒤로 밀리기 일쑤인데 기간마저 짧아져 '발만 구르는'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협의 설명회 이후 다수 매체에서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자 법무부는 해명 자료를 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주총 전에 사업보고서를 제공하는데다 주총을 4~5월 중으로 분산할 경우 부실감사 우려도 해소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상장협은 "미국의 경우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배당기준일을 따로 정할 수 있고, 주총도 언제든 할 수 있다"며 "우리가 미국처럼 하려면 상법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과 법 자체가 다름에도 일부만 쫓아가려다 국내 기업들만 골병들게 생긴 상황이다.
법무부는 "상장협, 실무자 등과 함께 초안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정말 귀를 열고 들은 것인지, 듣고 싶은 내용만 들은 것인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증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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