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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혁신가 포용사회가 산업혁명 이끈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8 17:54

수정 2019.11.18 17:54

[fn논단]혁신가 포용사회가 산업혁명 이끈다
문재인정부는 혁신과 포용을 집권 후반기 국정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를 해소하고 밀려오는 변화 물결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이때 적합한 정책대안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역점을 둬야 할 것은 이 과제들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사실 혁신과 포용은 모두가 찬동하는 훌륭한 덕목이며,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 등장한 정치·사회적 이슈다. 문제는 이 이슈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극히 제한된 나라만이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1차, 2차 산업혁명을 각각 선도한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첫째, 혁신은 과학기술 투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사람(조직)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산업을 발전시킨다. 따라서 연구개발 투자 못지않게 규제와 제도 개선이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섬유산업은 1760년부터 1840년까지 진행된 1차 산업혁명으로 무려 300배나 폭발적 성장을 했다. 그 뒤에는 옥양목으로 불리는 면직물에 대한 시장수요와 대규모 노동력 공급이 있었다. 이런 시장과 사람의 문제는 사회적 제도와 정부 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둘째, 일자리를 둘러싼 사회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혁신이 야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를 둘러싸고 촉발되는 사회적 갈등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학의 칼 프레이 교수는 '기술함정(Technology Trap)'이라는 최근 저술에서 산업혁명은 장기적으로 보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부를 축적하게 했지만 단기적으로는 기계화와 자동화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가져왔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낙후되는 역사적 패턴을 강조했다.

셋째, 혁신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원래 혁신이란 기존 틀을 깨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 기득권과 이해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때 지지기반이 취약한 혁신가들이 소외된다면 그 혁신은 구현될 수 없다. 18세기 영국의 존 케이와 제임스 하그리브스라는 발명가들은 베틀의 '북'을 자동화한 '플라잉 셔틀과 방적기라는 결정적 혁신을 일으키고도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야반도주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1차 산업혁명을 선도한 것은 정부가 혁신가 편에 섰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 정부는 나폴레옹과의 전쟁 때보다도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해 러다이트라는 폭동 수준의 기계파괴 운동을 극복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미래 흐름을 선도하는 혁신은 파괴적이고 공평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며 조용하고 무탈한 산업혁명은 역사적으로 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혁신으로 인한 갈등을 감추기보다는 중단기적으로 발생할 피해와 손해를 먼저 투명하게 드러내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손해를 보상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혁명기의 혁신은 고도의 정치·제도적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에 단순히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데만 집중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미래를 위해 서로 타협하고 투명하게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회적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
21세기 자본주의 미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얼마나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느냐와 함께, 미래에 자신의 운명을 건 혁신가들을 기득권으로부터 보호해 자유로이 뛸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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