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수 없다'

한일전 2점차 승패 가른건 수비
세밀함·기본기 모두 日에 뒤처져
韓 야구, 초·중등부터 바뀌어야

뉴스1
1987년 일본 시리즈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일본 프로야구의 권력이 '쇼군' 요미우리에서 신흥 세이부로 넘어 갔음을 선포했다. 요미우리의 감독은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 세이부의 감독은 수비형 포수 출신 모리 마사아키.

승부는 6차전에서 갈렸다. 세이부가 3-1로 이겼다. 선취점은 엉뚱한 장면에서 나왔다. 2회 말 1사 2루서 조지 부코비치의 중견수 깊숙한 플라이 때 2루 주자 기요하라가 3루를 거쳐 홈까지 내달렸다. 폭주의 결과는 세이프.

이 득점은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상대의 약점을 미리 파악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물이었다. 요미우리의 중견수는 워랜 크로마티. 강한 어깨를 지녔다. 그러나 포구를 한 다음 중계플레이로 넘어 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세이부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 전에도 아키야마가 중전안타 때 2루까지 뛴 적 있었다. 상대 수비진의 느슨한 습관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강타자 출신 감독은 '한 점 쯤이야' 쉽게 생각한다. 수비형 선수 출신은 '한 점'에 목숨을 건다.

17일 벌어진 일본과의 '프리미어 12' 결승전을 보면서 1987년 일본 시리즈를 떠올렸다. 한국은 3-5로 패했다. 일본대표팀 이나바 감독은 "한국과 일본의 실력 차는 종이 한 장"이라고 말했다. 두 경기 연속 2점차였으니 그럴 만했다.

종이 한 장 차이니 다음엔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 물론이다. 그러나 비록 한 장의 종이지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차이도 있다. 종이도 종이 나름이다. 결승전을 통해 치를 떨며 느낀 두 단어는 세밀함과 기본기였다.

2점차 승자와 2점차 패자의 차이는 수비에서 갈렸다. 김현수는 1회 말 상대 타자의 타구를 잘못 판단해 1루 주자를 홈까지 뛰어들게 만들었다. 일찌감치 3-0으로 앞선 상황서 일본의 기를 살려주고 말았다. 펜스 플레이를 제대로 했더라면 3루에서 묶었을 것이다. 그 차이는 컸다.

반대로 한국은 3회 초 김재환의 깊숙한 좌익수 뜬공 때 1루 주자가 2루로 뛰다 아웃 당했다. 1루 주자의 판단력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상대지만 일본의 수비를 칭찬하고 싶다. 이 두 차례뿐만 아니라 세밀함의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났다.

기본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이순철 해설위원은 "일본 투수들의 공 끝이 좋다"는 말을 자주했다. 공 끝은 단단한 하체에서 온다. 투수의 하체는 러닝으로 다져진 결과물이다. 기초 토목 공사가 좋아야 건물이 흔들리지 않는다.

투수의 좋은 하체는 공 끝은 물론 커맨드(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는 능력)와도 직결된다. 한국 고교야구 투수들은 러닝을 잘 하지 않는다. 선수가 싫어하니 감독도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러닝을 생략한 채 팔로만 던져 스피드를 내려니 잘 다친다. 고교야구 투수 태반이 팔꿈치 수술을 하는 이유다.

김경문 한국대표팀 감독은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며 자책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으려면 세밀함을 다지고 기본기부터 확 뜯어 고쳐야 하는데 갈 길이 멀다. 초등, 중학교 야구부터 확 바꾸어야 한다.
누가 그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겠나.

이치로는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야구를 이기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며 우리의 화를 북돋았다. 그 말이 차라리 낫다. '실력 차는 종이 한 장', 비꼬는 말처럼 들린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