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필리버스터·의원총사퇴·협상론…보수野 '패트 저지' 차악책 고심

뉴시스

입력 2019.11.26 17:02

수정 2019.11.26 17:02

한국당·변혁·공화당·무소속 합쳐도 표결 저지 불가능 변혁, 필리버스터 카드 꺼내…4년 만에 무제한 토론 한국당, 필리버스터·총사퇴 놓고 고심…일각에선 '협상론'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 회동을 하고 있다. 2019.1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 회동을 하고 있다. 2019.1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7일 본회의에 부의될 예정인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부의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보수 야권의 패스트트랙 저지책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바른미래당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소속 의원들은 26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이 강행 처리될 경우,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저지하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가능한한 법안 처리를 최대한 늦춰 '지연술'로 맞불을 놓겠다는 전략이다.

필리버스터는 지난 2016년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의 테러방지법 처리에 반발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표결을 막기 위해 쓴 전략이다.
변혁이 예고한 대로 필리버스터를 강행한다면 4년 만에 국회에 재등장하는 셈이 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변혁 내부 의견 수렴을 거쳐 "저희들은 합의되지 않은 선거법을 국회가 통과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걸 초기부터 분명히 해왔다"며 "어떤 형태로든 통과시키려고 민주당과 2중대 정당들이 획책하면 필리버스터를 해서라도 끝까지 막아보겠다"고 밝혔다.

변혁 대표를 맡은 오신환 원내대표도 "일정 정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새 수정안을 제출한다는 것 자체가 꼼수 야합"이라며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4월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켜서 정면 돌파하는 정도"라고 했다.

오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필리버스터 공조 여부에 대해 "한국당도 최선을 다해서 본인들 역할하겠다고 하니까 그쪽 당에서 판단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막기 위한 전략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가닥을 잡은 건 아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한국당이 주최한 '공수처법 추진의 위헌·위법성 검토 특별세미나'에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검토한다"며 "의원직 총사퇴부터 필리버스터에 이르기까지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이는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지만, 오히려 묘수가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서울=뉴시스] 이종철 기자 =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11.26.jc4321@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종철 기자 =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11.26.jc4321@newsis.com
실제로 황교안 당대표의 단식투쟁으로 선거법·공수처법 처리에 변수가 생겼지만, 범여권의 '패트 처리' 의지가 강해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은 실질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지만 여야 3당 교섭단체 협상과 별개로 '4+1' 협의체를 가동해 공조체제를 복원하며 한국당을 더 압박하는 모양새다.

여당에서 황 대표의 단식투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의식해 표결을 며칠 간 미룰 여지가 없진 않지만, 정기국회 회기 내에 법안 통과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2월10일까지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 임시국회를 소집해야 하지만, 한국당이 이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 시점의 문제일 뿐, 표결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데에 한국당의 의원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지난 4월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던 데다, 한국당 의원 절반 이상은 총선을 앞두고 패스트트랙 사건으로 수사선상에 올라 위축된 상태여서 패스스트랙을 물리적으로 저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에도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상돼 있다.

이에 따라 당 내에서는 필리버스터 제도와 의원직 총사퇴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실익 측면에서 최선책은 아니어서 사실상 최악책 보다 덜 나쁜 차악책을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유승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방문 후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9.11.26.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유승민,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방문 후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9.11.26. park7691@newsis.com
필리버스터는 본회의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재적의원 3분의1(99명)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면 가능하다. 총 108명의 의원을 보유한 한국당의 의석수만 놓고 보면 절차상 어려운 건 아니다.

필리버스터 종결은 재적의원 5분의 3(177명)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민주당이 범여권을 끌어 모아도 이를 저지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다만 국회 회기가 끝나 무제한 토론이 종결되더라도 다음 임시국회에서 언제든지 표결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을 저지할 근본적인 방책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원내 관계자는 "필리버스터를 한다고 해도 끝나면 결국 표결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패스트트랙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의원직 총사퇴는 일부 강성 의원들의 소수의 목소리에 그쳤지만, 재선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이 통과되면 의원직 총사퇴를 당론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중지를 모으면서 힘이 실리는 듯 했다. 당 지도부에서도 정미경 최고위원이 의원직 총사퇴를 강하게 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 내에서조차 거부감을 가진 의원들이 많다. 정기국회 회기 중에 의원직 총사퇴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다, 자칫 '쇼'로 비쳐질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패스스트랙에 반발해 한국당 의원 모두 사퇴한다고 쳐도 앞으로 우리에게 더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의원직을 던져 놓고도 지역구에서 내년 총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모양새가 좀 이상하지 않겠냐"고 했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원내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2019.11.26.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원내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2019.11.26. park7691@newsis.com
당의 다른 관계자는 "의원직 총사퇴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거의 없다"면서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이미지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 안팎에서는 이른바 협상론도 나오고 있다. 한국당이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완강히 반대해오던 태도를 바꿔 협상에서 최대한 목소리를 내는게 차라리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당이 기존에 고수하고 있던 비례대표 전면 폐지는 다른 야당에게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만큼 지역구 의석수 감소를 최소화하고 연동률을 낮춰 선거제 개편이 미칠 파장을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사실상 현행 선거법과 별반 차이 없는 합의안을 도출할 경우 한국당에게도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날 황교안 대표에게 "우리 당도 하나를 내주고 선거법은 정상적으로 돌리는 게 맞다"며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공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더불어민주당과 협의해서 통과시켜 주고 연동형비례대표제는 민의에 반하는 제도인데 그것까지 강행 처리하면 우리는 총선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막을 수 없다면 민주당처럼 전략적으로 이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선거법 개정안 수용을 전제로 하는 만큼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진 않고 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선거법 개정안이 반드시 한국당에 반드시 불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민주당이 정의당을 2중대처럼 내세운다면 우리도 공화당이나 다른 위성정당을 만들어 대응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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