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밝히는 사람들]

"우리가 곧 세계 철강의 역사" 20년 용광로 지킨 뜨거운 가슴

포스코 용광로 현장근로자
쇳물 배출 업무 강원구 과장
1500도 고온의 쇳물 다루는 일
자칫 사고 이어질라 매순간 긴장
"고로 작업에서 최고 되는게 꿈"

포항제철소 제선부 강원구 과장이 2고로에서 쇳물 출선작업을 하던 중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 과장은 1500℃ 고온으로 쇳물을 녹이는 용광로를 최일선에서 지키고 있다.
【 포항=김은진 기자】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포항제철소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쏟아졌다. 시뻘건 쇳물은 출선(용광로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을 거쳐 철강산업이 한국 경제발전의 뿌리라는 것을 증명하듯 힘차게 용선운반차(TLC, Torpedo Ladle Car)로 옮겨졌다. 당시 박태준 포스코 사장과 임직원들은 쇳물을 만들기 위해 마음 졸였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눈물로 쇳물의 첫 포효를 지켜봤다. 철강인들의 땀과 눈물이 섞인 쇳물은 그렇게 한국 경제발전의 신호탄이 돼 주었다. 포항제철소의 용광로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식지 않은 채 46년 동안 1500℃의 고온으로 철광석을 녹여 자동차, 조선, 건설 등 한국의 경제 중심축인 주요 산업을 받쳐주고 있다. 찬바람이 부는 포항의 초겨울 길목에서 만난 포항제철소 강원구 1제선공장 과장은 20여년 동안 한결같이 용광로를 지키고 있었다. 용광로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뜨거운 고열을 4계절 내내 견뎌오고 있다는 그는 그나마 여름보다는 겨울이 작업하기 편하다며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넸다.

■돌발상황 대비 365일 촉각

강 과장은 자신이 용광로에서 맡은 업무에 대해 "2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을 고로 밖으로 배출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면서 "고온의 제품을 대하다보니 언제 발생할지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동료들과 늘 '안전'에 대해 생각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쇳물을 배출하는 통로인 출선구를 관통 또는 폐쇄하기 위한 기계 운전과 함께 쇳물이 흐르는 길인 탕도의 관리 등을 맡고 있다. 쇳물이 세상 빛을 보는 첫 순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강 과장이 근무하고 있는 2고로는 마침 쇳물 출선을 위한 선제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쇳물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탕로를 개방하고 철광석을 녹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 등이 안전하게 배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고로 작업장에서 탕로쪽을 바라보니 가스가 나온 후 쇳물이 나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불꽃이 마구 튀었다. 강 과장은 "불꽃이 짧은 순간에 튀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 보기가 힘든데 이렇게 직접 보여줄 수 있어 행운"이라면서 "TV에서 애국가 시작하는 장면에 시뻘건 쇳물이 나오는데 안전을 위해 출선때에는 작업표준상 덮개로 닫아준다"고 말했다.

2고로에는 2개의 출선구가 있다. 하루 동안 총 6~7번 쇳물이 출선을 한다. 쇳물이 한번 출선을 하기 시작하면 3~4시간 동안 이어진다. 작업자들은 4교대로 고로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제2고로에서만 하루 5700t의 쇳물이 생산된다. 고로 내부에서는 철광석을 용융(물질이 가열되어 액체로 변화), 환원시켜 쇳물을 생산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해외 철강인에 작업복·신발 주고 와

강 과장은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도 출장을 가봤지만 세계 1위 철강사인 포스코의 기술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미 고로 작업장에는 표준화된 매뉴얼이 상세히 마련돼 있고 이에 따른 직원 교육도 철저히 하고 있지만 반세기 가까이 축적된 기술 개발과 다양한 돌발 시나리오에 따른 대비책은 아무나 흉내낼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과장은 몇년 전 인도네시아 국영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스틸에서 고로를 세울때 방문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포스코는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해 지난 2014년 '크라카타우 포스코'(PT. Krakatau POSCO) 공장을 세웠다. 강 과장은 크라카타우 포스코에 근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고로 기술을 전달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 만났던 인도네시아 철강인들은 적극적이었다.

강 과장은 "스무살, 스물한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우리에게 고로 기술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철강인들이 이뤄놓은 업적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한달간 낮에는 같이 일하고 저녁에는 회식하면서 많이 친해지자 한 청년이 입고 있었던 작업복과 신발을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해 주고 왔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철강인들의 정신을 본받고 싶다며 크게 미소짓고 있는 인도네시아 철강인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했다.

■우리의 고로 기술이 곧 세계 역사

하루 종일 긴장속에서 일하지만 동료들을 챙기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커피 한잔 마시면서 작업 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그에 따른 조언도 같이 해주는 게 그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다. 고로 작업이 숙련된 기술과 팀워크를 요하는 만큼 동료들과의 화합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 과장은 "현장은 생물처럼 살아있어 상황이 늘 변하므로 고로 작업자가 그 변화에 언제나 대응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육체와 정신 관리를 해야 하고 동료들과도 마찰없이 잘 화합해야 안전하게 작업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철강인으로서의 꿈이 하나 있다.
본인이 맡은 고로직에 있어서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혁신 툴을 통해 항상 그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강 과장은 "세계 1위인 포스코 제철소에서 그것도 심장부인 고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곧 세계 철강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동료들이 이뤄놓은 세계 최고 기술력이 후배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언제나 긴장하고 도전하는 자세로 고로 현장을 안전하게 한결같이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happyn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