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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블룸버그, 트럼프를 떨게 만들까

뉴스1

입력 2019.12.03 10:24

수정 2020.04.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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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 그가 만일 당선된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의 재산은 580억 달러, 한국 돈으로 치면 약 68조원으로 미국에서 8위의 부자다.

그가 당선된다면 유태인 출신 첫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태인으로 러시아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갔다.

그가 당선된다면 78세 최고령으로 취임하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태어났다.
현재까지 취임 당시 나이가 가장 많은 미국 대통령은 70세에 선서한 현재의 도널드 트럼프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을 두고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11월 하순 미국 민주당 대통령 예비 선거전에 뒤늦게 뛰어들어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미국 정치 풍토의 전통으로 볼 때 대통령 후보로 유리할 게 없는 신상명세서다. 그럼에도 그에게 미국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결하여 승산이 있는 후보가 딱히 드러나지 않은 민주당 내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그는 20년 전 정치적 무명상태에서 9·11 테러의 혼란을 뚫고 뉴욕시장으로 당선되고 3선을 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즉 미국 국내정치에 외국을 끌어들인 혐의로 미국 하원의 탄핵조사를 받고 있다.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이 탄핵재판에서 자기 당 대통령을 유죄로 판결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 하원의 탄핵소추를 받는다면 재선가도에서 받을 정치적 외상(外傷)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가 탄핵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만으로도 내년 11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주당은 나쁘지 않은 조건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선거과정에서 파괴력을 지닌 후보가 부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 주자군은 오바마 대통령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낸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 상원의원, 피터 부티지지 인디아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4강을 형성하는 형국이다.

샌더스 78세, 바이든 77세, 워런 70세로 민주당 선두 후보들이 모두 고령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바이든은 6선의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민주당의 온건파 정치인이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파편을 맞고 있다.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샌더스 상원의원은 고정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과격한 좌파 이미지 때문에 확장성이 묶여 있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을 누르고 선두로 올라서며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첫 여성대통령의 희망을 던졌던 워런 상원의원(70세)은 그의 반(反) 기업 정책이 부각되면서 인기가 주춤하고 있다. 부티지지 사우스벤드 시장이 37세의 젊은 나이와 온건 정책에 힘입어 첫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해 관심을 끌기 시작했지만 파급력은 아직 미지수다.

탄핵정국에 몰려 있지만 트럼프는 아직 괜찮은 미국 경제와 대중 무역전쟁을 에너지로 삼고 열성 지지자들의 표심을 쥐고 있다. 미국 정치평론가들의 말에 의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거짓말을 하든 말실수를 하든 개의치 않고 그를 따른다는 것이다. 일종의 콘크리트 지지층 위에 있다.

미국의 중산층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친화적이다. 온건 공화당원들, 정당에 가입하지 않는 무소속 유권자들, 도시근교 여성 유권자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계층들이다. 그러나 작년 중간선거에서 이들이 반 트럼프 정서를 보이며 민주당이 하원선거에서 승리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당이 내년 선거에서 백악관을 탈환하려면 이들의 표심을 공화당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잡는 일이 중요하다.

따라서 민주당에게 지금 필요한 대선 후보는 진보적 가치를 지니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정치인이다. 그런 맥락에서 블룸버그의 강점이 언론에서 부각되는 것 같다. 블룸버그는 여성비하 스캔들 등 여러 가지 약점을 안고 있지만 총기규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지지한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항마로 적합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부자들이지만 블룸버그의 재산 규모가 거의 15배 이상 많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을 부모에게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인데 반해,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미디어 그룹을 창업해 사업을 키운 자수성가형 부자로 서로 대비된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판이하게 다르다. 기후변화 같은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중국의 음모’라고 비난하며 파리기후협정을 끝내 탈출하고 말았다. 대조적으로 블룸버그는 환경 해결을 위해 자선 기부를 스스럼없이 했다. 급진적이고 진보적 환경문제에 돈을 기부한 사례가 미국의 유력한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석탄 화력발전소 퇴출 운동에 5000만 달러를 쾌척한 것이다. 그는 뉴욕시장 재직 때 서울을 포함한 세계 40대도시기후변화리더십그룹의 의장을 맡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의해 ‘도시와 기후변화’ 담당 특별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문제는 블룸버그가 대통령 본선에서는 트럼프와 겨뤄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민주당 예선통과가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의 정치 속담 중에 “뉴햄프셔가 가는 대로 미국이 간다”는 말이 있다. 당원대회(코커스)와 예비선거가 처음 치러지는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주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름 내내 이 조그만 표밭에 드나들며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노력을 기울인다. 예비선거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중도 포기를 선언한다.

뒤늦게 출마를 선언한 블룸버그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를 건너뛰고 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등 큰 주를 겨냥하여 미디어 광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 그의 선거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돈이다. 풀뿌리 유권자를 직접 접촉하는 대신 미디어 광고로 "미국과 미국인에 실질적 위협인 대통령을 쫓아내고 미국을 재건하는 데 모든 것을 걸겠다"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선거는 일종의 내란이 아닐까. 하원의 대통령 탄핵소추 준비와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로 2020 미국은 정치적 내란 상태가 될 것이다. 한국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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