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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잔치로 끝난 ‘아람코’상장..아시아 자본 유치로 눈 돌린다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1 17:16

수정 2019.12.11 17:16

사우디 야심찬 계획 틀어지자
내년 日·中 증시에 상장 계획
"1조7000억달러 고집한 패착"
주문 대부분 중동 우방에 그쳐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로이터 뉴스1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로이터 뉴스1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년에 일본이나 중국에 국영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1일 사우디 리야드 타다울 증시에서 아람코가 첫 거래를 시작하면 이를 발판으로 아시아 증시에 상장한다는 계획이다. 타다울 증시 상장 1년 뒤 도쿄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다던 이전 계획을 되살리는 것으로 보인다.

높은 가격과 지배구조에 대한 불안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아람코 주식에서 등을 돌려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는데 실패한 사우디가 미국이나 유럽 투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같은 문제에 덜 민감한 아시아 투자자들을 상대로 자본유치전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WSJ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이 아람코 아시아 상장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최근 수주일 간 국제 투자자들과 여러 차례 회동했다고 전했다. 아람코 상장을 통해 국제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를 종잣돈 삼아 '탈석유시대'를 대비한 경제 육성에 나서려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찬 계획이 틀어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대안으로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아람코는 지난 5일 전체 기업가치가 1조7000억달러가 되는 수준에서 기업공개(IPO)를 결정했다. 11일 타다울 증시에서 첫 거래가 이뤄지면 전체 지분 가운데 1.5%를 매각해 256억달러를 끌어들이게 된다. 상장 이후 한동안 주가는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의 서슬에 사우디 기관투자가들은 매도를 꺼릴테고, 개인 투자자들은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주식을 10% 더 얹어 주기로 한 유인에 끌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야심찬 상장 계획을 내놓은 뒤 우여곡절 끝에 4년을 끌며 드디어 아람코 상장을 성사시켰지만 기대와 달리 상장은 동네잔치로 일단 막을 내렸다. 기관투자가들로부터 1060억달러가 넘는 주문이 들어오는 등 인기는 높았지만 주문 대부분이 사우디 국내와 인근 중동지역 우방들로부터 나왔다.

상장 주간사인 삼바 캐피털에 따르면 주식 주문 가운데 37.5%는 사우디 기업들로부터 나왔고, 13.2%는 정부 기구의 주문이었다. 또 사우디 국내 자산운용사들과 연금이 26.3%를 차지했다. 사우디의 동맹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쿠웨이트가 25억달러어치를 사들이는 등 비 사우디 기관투자가들은 약 39억4000만달러를 투자해 지분 23%를 가져갔다.

당초 빈살만 왕세자가 지분 5%를 매각해 1000억달러를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주요 국제 기관투자가들의 외면을 받았다.

상장 계획 초기에만 해도 뉴욕이나 런던 증시 상장 가능성이 높았지만 테러관련 줄소송, 투자자 감시 강화 등을 우려해 사우디는 일단 타다울 증시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타다울 증시 상장은 그러나 아람코 상장 목표와 동떨어지는 결과를 빚으면서 사우디가 곧바로 아시아 증시 상장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1조7000억달러를 고집한 사우디의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런던 투자은행 텔리머의 주식전략 책임자 하스나인 말리크는 국제 기관투자가들이 생각하는 가격보다 높은 1조7000억달러로 IPO에 나선 사우디의 결정은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말리크는 사우디가 만약 국제 수준에 맞는 가격대를 책정했더라면 아람코 상장은 순조롭게 진행됐을 뿐만 아니라 사우디가 "기관투자가들과 역동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메시지도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우디 국부펀드·개인·기관투자가들이 아람코 주식을 사들이는 바람에 이들이 사우디의 다른 경제 부문에 투자할 여력이 줄었다. 사우디 3400만 인구의 약 15%인 500만명이 아람코 주식을 매수해 아람코를 국민주화 한다는 목표 가운데 하나는 달성할 수 있었지만 민간 부문 투자에 투입될 수 있는 사우디 자본 상당분이 아람코에 묶여버렸다.


극장 등 유흥시설 개장, 외국 관광객 허용 등 파격적인 조처에도 불구하고 저유가로 인해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우디가 아람코 상장으로 외국 자본을 확보해 도약에 나설 수 있을지 여부는 이제 아시아 투자자들에게 달리게 됐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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