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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나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2 17:14

수정 2019.12.12 17:14

[여의나루] 나와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연말 송년회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학연, 지연 그리고 비즈니스의 인연을 따라 곳곳에서 벌어지는 송년회를 다 참석하려고 하면 힘이 부치는 느낌도 든다. 필자와 같이 '술이 약한' 사람은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년회 자리는 특별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오랜만에 나온 친구, 친지들이 들려주는 새 소식에 희비를 함께하기도 하고, 누군가 끄집어내는 옛 추억들도 매년 비슷한 이야기인데도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송년회의 가장 큰 안줏거리는 시국에 대한 이야기,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에 대해 서로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종종 이런 자리에서 서로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다가 그만 그 자리 자체가 깨어져 버리는 경우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보다는 그런 경우가 적어진 느낌이긴 하지만. 이렇게 토를 단 이유는 근래 와서 그런 류의 모임들조차도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별도의 소모임으로 나뉘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유상종'의 효과가 송년회 등의 모임에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우리는 편안하다. 다른 쪽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성토하는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그런 의견들은 서로가 보태는 새로운 정보들에 힘을 얻어 더욱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정치적 견해들이 공고해지고, 자신들과 다른 견해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비단 송년회뿐일까. 이렇게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멀리하며 진정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만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연중 열리는 수많은 포럼, 학술회의, 소모임 등의 모습도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보다 정치적 토론이 훨씬 성숙돼 있다고 생각되는 프랑스에서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저녁 모임에서 절친한 친구 남편들끼리 서로 보수, 진보로 견해가 갈라졌으면서도 두세 시간에 걸쳐 갑론을박 의견들을 줄기차게 나누곤 했다. 물론 시국의 중요한 이슈들을 포함하면서도 말이다. 당시 이런 상황을 보고 속으로 놀란 필자는 아내들이 워낙 친하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풍토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토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을 때도 지나치게 적대적 감정을 섞지 않는 자세야말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톨레랑스(관용)' 문화의 근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유상종만 추구하는 우리나라 문화의 폐해는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끼리도 그런 유유상종의 문화가 강하게 작용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기업들 규모, 종사하는 업종, 일하는 장소 등에 따라 다른 모임을 만들고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만 논의하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큰 기업들은 중소기업의 애로에 대한 배려가 없고, 우리나라 스타트업들은 다른 큰 기업들과 협업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각각 서로 가진 특장이 다르고, 서로가 다른 쪽의 특장을 잘 결합했을 때 새로운 산업들이 태어날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보다 신산업을 쉽게 탄생시키는 미국이 그렇고, 전통산업에서 뒤진 중국이 신산업에서 앞선 이유도 이런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타다'의 퇴출도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진정한 대화가 모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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