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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규제혁신, 플러스경제로 가는 지름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31 16:06

수정 2019.12.31 16:06

재정 늘려봤자 성장에 한계
민간에 기관차 역할 맡겨야
규제 풀면 시장에 활기 돌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 30일 "2020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까지 반등해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한 해를 결산하는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홍 부총리의 새해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2019년 성장률은 잘해야 2% 턱걸이가 예상된다. 재정 투입으로 간신히 끌어올린 수치다. 지난 수년간 성장률은 추세적인 내림세다.
이를 거꾸로 되돌리는 건 여간 어렵지 않다. 홍 부총리의 소망이 이뤄지려면 성장률이 2.5~2.6%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잠재성장률은커녕 정부가 제시한 새해 성장률 2.4%도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이 들끓는다.

그렇다고 홍 부총리의 소망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 조건이 있다. 정책 기조를 확 바꿔야 한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성장률을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한다. 홍 부총리는 "부총리로 1년 남짓 의욕과 열정을 갖고 일을 했는데 민간 활력이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받은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며칠전 "지난해 민간의 성장 기여율은 25%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는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재정 곧 세금으로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민간 곧 기업이 이끄는 성장이라야 지속가능하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해법은 다 나와 있다. 다만 선택의 문제,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서비스산업 혁신을 주문한다. 제조업에선 더이상 일자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는 의료·관광과 같은 서비스산업에 있다. 혁신은 필연적으로 기득권과 충돌한다. 이때 정부가 나서서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의 혁신 의지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원격의료와 같은 의료혁신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제정하려는 노력도 멈춰섰다.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내년 한국 경제는 반등은커녕 가파른 내림길로 들어설 공산이 크다. 이른바 일본화 조짐이 더 뚜렷해질 수도 있다. 일본을 빼닮은 인구 구조를 보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새해 소비자물가가 0%대 중반의 낮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저성장·저물가, 곧 디플레이션 공포는 한국 경제를 배회하는 유령이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경제가 성숙한 선진국에 새로운 개혁 모델을 제시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기업·업종별로 40여종이 넘는 각양각색의 연금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게 목표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몇 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마크롱은 물러설 뜻이 없다. 대신 그는 퇴직 대통령이 받는 고액연금을 포기하고 이를 단일 연금제도 안에 편입시키겠다며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마크롱의 연금개혁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지도자의 개혁 의지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자세다. 마크롱은 지금 프랑스에 꼭 필요한 개혁으로 연금을 선택했고 칼을 뽑았다.

2020년 한국 경제에 필수불가결한 개혁은 무엇일까. 1순위는 노동개혁이다. 정규직 노조는 기득권 철옹성을 쌓았다. 회사를 살리는 구조조정도 노조가 반대하면 한발짝도 나아가기 힘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엔 거대한 철조망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친노동 성향의 문재인정부에 노동개혁을 주문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현실적인 차선책은 바로 규제개혁이다. 문 대통령 스스로 붉은깃발법을 언급하면서 혁신성장 의지를 내비쳤다. 규제샌드박스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타다'를 둘러싼 논란이 물을 흐렸다. 박용만 회장은 타다에 대해 "국민을 우선순위 1번으로 놓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다가 기존 택시업계의 생계를 위협하는 문제는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잘라말했다. 문 대통령의 결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새해는 문재인정부 4년차다. 국민에게 손에 잡히는 성과를 보여야 할 때다. 지난 3년간 문 정부는 최저임금 올리고 근로시간 줄이고 부동산 세금 올렸다는 기억만 선명하게 남는다. 앞으로 남은 2년은 화끈한 규제개혁으로 한국 경제를 새로운 궤도에 진입시켰다는 평가를 듣기 바란다.

파이낸셜뉴스는 2020년을 관통하는 주제를 '마이너스(M) 경제에서 플러스(P) 경제로 전환하라'로 정했다. 우리는 규제개혁이야말로 플러스 경제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고 싶은 홍 부총리의 새해 소망도 규제혁신에서 출발한다. 질좋은 일자리도 결국은 혁신에서 나온다.
전임 정권들도 하나같이 규제를 풀겠다고 나섰지만 시늉에 그쳤다. 이대로 가면 이른바 J노믹스는 그저 최저임금을 올린 정책이란 인상만 줄 수 있다.
새해엔 규제혁신이 J노믹스의 대표 상품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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