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fn논단]히치하이킹 2020!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1 16:49

수정 2020.01.01 16:49

[fn논단]히치하이킹 2020!
구보PD는 집을 나와 차에 올랐다. 2020년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녀석!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분명 정지시켰거늘 오늘도 움직이네. 구보씨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골목길을 나서는데 누군가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가까이 다가가자 손짓이 절박하다. 구보씨는 무슨 일인가 싶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창 너머로 안경 쓴 앳된 청년이 다가왔다.
유리 문을 내리자 차 좀 태워 달라고 한다. 히치하이킹? 구보씨는 경계의 말투로 "어디를 가는지 알아야 태워줄 것 아니냐"고 했다. 청년은 어눌한 말투로 "영화감독의 길을 갑니다. 감독님 옆자리에 태워주세요"라고 했다.

헐! 구보씨가 한때 잘나가던 드라마 감독인 줄 아는 녀석이네? 바타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녀석은 몽골에서 유학 온 청년이다. 생긴 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배우러 왔다. 어릴 적 꿈은 화가였지만 고등학생 때 영화팀의 스토리보드를 그려주다가 영화감독에 꽂혔다고 한다.

그날 후로 녀석은 구보씨의 드라마 강의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다. 옆자리에 앉아 구보씨가 만든 드라마에 대해 묻기도 하고, 또 구보씨가 하는 말에 쫑긋 귀 세워 듣고 금과옥조라도 되듯 메모까지 한다.

구보씨는 바타르를 태우고 다니는 중에 불쑥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인생이 히치하이킹이다!" 인생길 홀로 가는 여행이지만 긴 여정 이런저런 길벗을 만나 함께 가는 삶이다.

제자는 스승을 히치하이킹하고, 목사는 예수님을, 스님은 부처님을 히치하이킹 중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저런 히치하이킹으로, 어떤 길은 운전자가 되어 누군가를 태워주기도 하고, 또 어떤 길은 누군가의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가기도 한다.

구보씨, 어제는 바타르와 달리다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을 했다.

"올해는 나야말로 히치하이킹을 하자. 선배 대감독들의 차 옆자리에 타고 이것저것 배우자." 옛말도 있다. 나무는 큰나무 옆에 있으면 손해 보지만 사람은 큰사람 옆에 있으면 덕 본다고 했다.

첫번째는'히치하이킹 히치콕'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관객을 오르간처럼 연주한 스타 감독이다. 지금도 구보씨는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오르간이 되고 만다. 두번째는 구로사와 아키라 선생. 그는 일본을 넘어 세계 모든 영화인의 스승이 되었다. 세번째는 빌리 와일드 선생. 그는 구보가 가장 닮고 싶은 스토리텔링의 천재감독이다.
네번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 '닥터 지바고'를 만들어 기사(Knight) 작위를 받은 Sir 데이비드 린.

중국의 장이모 감독 옆자리에도 앉고 싶다. 그는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거머쥐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죠스' 'ET' '쥬라기 공원' 같은 황홀한 스토리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다.

구보씨, 오지랖 넓게 파이낸스뉴스 독자들께도 2020년 히치하이킹을 강추한다!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