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사진이 광화문 육조거리를 굽어보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군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국난극복의 상징으로 이만 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국민적 경모의 대상이 된 것은 전형적인 영웅의 면모를 갖췄기 때문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영웅의 원질신화(monomyth)를 밝혔다.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주인공이 일상에서 출발, 초자연적 세계로 모험을 떠나 놀라운 지혜와 용기를 보이며 난관을 극복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선행을 베푼다는 패턴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나 관우와 같은 고전적 영웅의 탄생 이면에는 불가피하게 수많은 시민의 희생이 따르고, 이들의 가치는 간과되곤 한다. 이를 반성해 사회적 효과를 전방위적으로 고려하도록 발전한 것이 현대 영웅학(heroism science)이다. 현대 영웅학은 원질신화의 단순한 전개를 극복하고 영웅 개념을 일상생활에 적용, 다각도의 정의를 시도한다. "보편적 규범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자발적으로 감수해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과 같이 보는 것이다. 영국은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 책임, 영웅적 행동에 관한 법'까지 제정했다. 영웅적 행동을 사회에 확산키 위한 것이다. 영웅은 인간적 또는 사회적 공감능력과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누구나 하기 어려운 업적을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웅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나라를 구하는 거대담론 속 전쟁영웅도 좋지만, 약자의 설움을 함께하고 나눌 줄 아는 작은 영웅이야말로 구조적 모순과 고난의 시대에 절실한 존재다.
새해 첫 글을 영웅을 기대한다는 식의 말로 시작하는 것은 자조적일 수 있다. 작금의 현실이 정상적 시스템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일의 희망은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1989년 KBS에서 방영됐던 만화영화 '2020년 원더키디'에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탐사에 나섰던 독수리호는 실종됐지만, 평범한 이웃들로 구성된 또 다른 구조대가 모험 끝에 결국 이들을 구해온다. 금년에는 이웃에서 솟아오르는 진짜 2020년 원더키디들이 참신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약력 △55세 △고려대 법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J.D./LL.M. △고려대 ICR센터 소장 △한국경쟁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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