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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2020년 원더키디' 영웅을 기다리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6 16:38

수정 2020.01.06 16:38

[fn논단] '2020년 원더키디' 영웅을 기다리며
새해 벽두부터 미국이 이란 군부 실권자를 드론 공격으로 살해했다는 소식이 세계를 강타했다. 20세기 후반 세계적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과 그 토대에서 글로벌 분업체계를 구축해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였다. 그 주역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누적된 모순을 기화로 구조조정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막론하고 자국 이기주의를 향해 광범위하게 진행 중인 정치적 보수화 물결이 먹이 삼는 것은 경제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이다. 경제가 양적으로는 성장하는데, 왜 나와 다수 시민들 생활은 더 빡빡해지고 극소수 대기업들에 휘둘릴까 하는 의문에 누구도 납득할 만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19세기부터 팽창한 패악적 제국주의의 배경이 독점자본주의의 모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미래가 암울하고 답답하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사진이 광화문 육조거리를 굽어보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금년도 예외가 아니다. 군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국난극복의 상징으로 이만 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국민적 경모의 대상이 된 것은 전형적인 영웅의 면모를 갖췄기 때문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영웅의 원질신화(monomyth)를 밝혔다.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주인공이 일상에서 출발, 초자연적 세계로 모험을 떠나 놀라운 지혜와 용기를 보이며 난관을 극복한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선행을 베푼다는 패턴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나 관우와 같은 고전적 영웅의 탄생 이면에는 불가피하게 수많은 시민의 희생이 따르고, 이들의 가치는 간과되곤 한다. 이를 반성해 사회적 효과를 전방위적으로 고려하도록 발전한 것이 현대 영웅학(heroism science)이다. 현대 영웅학은 원질신화의 단순한 전개를 극복하고 영웅 개념을 일상생활에 적용, 다각도의 정의를 시도한다. "보편적 규범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자발적으로 감수해 뚜렷한 업적을 남긴 사람"과 같이 보는 것이다. 영국은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 책임, 영웅적 행동에 관한 법'까지 제정했다. 영웅적 행동을 사회에 확산키 위한 것이다. 영웅은 인간적 또는 사회적 공감능력과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누구나 하기 어려운 업적을 만드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영웅이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나라를 구하는 거대담론 속 전쟁영웅도 좋지만, 약자의 설움을 함께하고 나눌 줄 아는 작은 영웅이야말로 구조적 모순과 고난의 시대에 절실한 존재다.

새해 첫 글을 영웅을 기대한다는 식의 말로 시작하는 것은 자조적일 수 있다. 작금의 현실이 정상적 시스템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만큼 어렵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일의 희망은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1989년 KBS에서 방영됐던 만화영화 '2020년 원더키디'에서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탐사에 나섰던 독수리호는 실종됐지만, 평범한 이웃들로 구성된 또 다른 구조대가 모험 끝에 결국 이들을 구해온다.
금년에는 이웃에서 솟아오르는 진짜 2020년 원더키디들이 참신한 영웅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약력 △55세 △고려대 법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J.D./LL.M. △고려대 ICR센터 소장 △한국경쟁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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