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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 독립성이 생명이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9 17:08

수정 2020.01.09 17:08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
간섭하면 존재 의미 사라져
7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 채비를 마쳤다. 김지형 위원장(변호사·전 대법관)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의 노조, 경영권 승계 문제도 준법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가장 아픈 곳도 건드리겠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 수락 조건으로 위원회 구성과 지위에 있어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달라고 요구했고 삼성이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독립적인 준법감시위를 두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올바른 선택이다. 삼성은 큰 것만 추려도 3건의 재판에 얽혀 있다.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회계부정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고위 간부들은 노조 와해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자부하는 삼성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준법감시위 출범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과 직접 관련이 있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공판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다시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4차 공판이 열리는 1월 17일까지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은 신년 초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는 반성문을 냈다. 이 때문에 준법감시위가 이재용의 감형을 위한 면피용 조직 아니냐는 의심을 산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위원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계기가 무엇이든 삼성이 스스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아무것도 안 하기보단 실패하더라도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진보 성향 판결로 이름이 높았다. 퇴임 후 서울 구의역 지하철 사고 진상규명위원장,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장, 삼성전자 반도체질환 조정위원장 등을 맡으면서 민감한 사회적 갈등을 조화롭게 푸는 능력을 보였다.

삼성에 당부한다. 준법감시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자율성·독립성 약속을 지켜야 한다. 쓴소리도 새겨들을 줄 알아야 한다. 간섭을 시도하는 순간 준법감시위는 존재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
궂은 일을 맡은 김 위원장에도 당부한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변화는 금방 티가 난다.
그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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