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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훔치기’와 ML 명장의 몰락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14 19:13

수정 2020.01.14 19:13

‘월드시리즈 우승’ 일군
힌치 전 감독 즉각해임
‘사인 훔치기’와 ML 명장의 몰락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AP 뉴시스
AP 뉴시스
A J 힌치 전 휴스턴 애스트로스 감독(46·사진)은 이 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손꼽혔다. 힌치 전 감독이 이끌던 휴스턴은 최근 3년 연속 시즌 100승을 넘겼다. 뉴욕 양키스나 LA 다저스(이상 두 차례)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다. 2017년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창단 55년만의 첫 우승이었다.

힌치 전 감독은 '서부의 하버드'로 불리는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했다.
고교와 대학 재학 중 두 차례 메이저리그 구단에 드래프트됐으나 끝내 학사학위(심리학)를 손에 넣었다. 5년간 휴스턴 감독으로 재임하면서 481승(329패, 승률 0.594)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서도 28번(22패)의 승리를 팀에 안겨주었다.

힌치 전 감독의 공든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14일(한국시간) 힌치 전 감독과 제프 르나우 전 단장에게 1년 자격정치 처분을 내렸다. 2017년 월드시리즈서 전자 장비를 이용해 상대팀(LA 다저스)의 사인을 훔쳐 본 혐의다. 휴스턴 구단은 즉각 두 사람을 해임시켰다.

전자 '사인 훔치기'는 홈경기서만 가능했다. 실제로 휴스턴은 2017년 플레이오프 홈경기서 8승1패의 압도적 성적을 거두었다. 원정 경기서는 3승 6패. 홈경기서 18개의 홈런을 기록한 휴스턴은 원정에선 9개에 그쳤다. 홈에서 평균 5.7점을 올렸지만 밖에선 3점을 겨우 뽑아냈다. 이 같은 홈·원정 경기의 불균형은 '사인 훔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결론이다.

메이저리그에는 '블랙삭스 스캔들'이라는 흑역사가 있다. 1919년 월드시리즈서 도박사들에 매수당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고의로 져주기 경기를 펼쳤다. 원인 제공을 한 측은 찰리 코미스키 구단주였다.

그는 시즌 전 에이스 에디 시카티에게 30승을 올리면 1000달러를 보너스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1000달러는 꽤 큰 돈이다. 스카티가 29승을 거두자 구단주는 감독에게 압력을 가해 더 이상 경기 출전을 못하게 막았다.

결국 스카티는 30승 달성에 실패했고, 이에 격분한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마수를 뻗친 도박사들에게 걸려들었다. 화이트삭스는 사전 약속대로 신시내티 레즈에 패했다. 하지만 추악한 뒷거래 내막이 드러나 8명의 선수가 영구 추방당했다.

이로 인해 막 꽃을 피우던 야구산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등장이 없었더라면 야구는 끝내 팬들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화이트삭스 구단은 지금까지도 '블랙삭스'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인 훔치기'에 관련된 휴스턴 구단과 힌치 전 감독도 비슷한 운명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처벌은 두 사람에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함께 관련된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과 신임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 감독에게도 조만간 불똥이 튈 조짐이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그동안 물렁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번 조치만큼은 단호했다.


힌치 전 감독과 코라 감독(45)은 '명예의 전당'을 예약한 40대 사령탑이다. 한 차례씩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며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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