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여의도 and]"얼굴이 연탄색" "집에서 쉬셔도"…선거 흔든 당대표 설화史

뉴시스

입력 2020.01.18 14:27

수정 2020.01.18 14:27

'백브리핑' 안 한다는 이해찬, 공식 발언서 잇단 실언 정동영, 노인 폄훼 파장…文 "어르신, 바꿀 의지 없어" 김무성, 흑인 향해 "연탄색"…"저출산 대책은 조선족" 전문가 "실언, 망언은 사회적 약자 대상인 경우 많아" "노인, 장애인 등에 편견 드러나 대중 분노지수 커져"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관련 발언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1.16.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관련 발언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1.16. kkssmm99@newsis.com


※ '여의도 and'는 정치권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여의도 국회는 물론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 등의 조직과 사람들 사연, 제도와 법령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 각종 사건사고 후일담 및 에피소드 등을 뉴시스 정치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길거리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가 지론이다. 통상 정치인들은 공식 석상에서 이동하는 도중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백브리핑'을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11월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도중 따라붙은 기자들의 질문에 마이크를 밀치며 "그만하라니까"라며 '버럭'하기도 했다.

백브리핑을 하지 않는 것은 혹시 모를 설화(舌禍)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기자들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변을 하다 보면 실수가 나오게 마련인데 이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수많은 정치인이 백브리핑 과정에서 말실수를 해 곤욕을 치른다. 이 대표는 백브리핑 대신 정례 기자간담회를 갖고 언론과의 소통을 유지하면서도 메시지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 이 대표가 잇따라 설화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자들의 돌발 질문도, 백브리핑도 아닌 '준비된' 공식 발언에서다. 지난 15일 자당 유튜브 채널 '씀' 인터뷰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가 된 뒤 그해 12월 잇단 발언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12월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치권을 보면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해 처음으로 '장애인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같은 달 친딘중 베트남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선 "한국 사람 중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아주 많이 하는데 다른 여성들보다 베트남 여성들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때로는 당대표의 '입'이 총선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대표에 앞서 과거 설화로 곤욕을 치른 여야 영수들의 사례는 이러한 '당대표 리스크'를 확인시켜준다.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후폭풍에 경로당 돌며 읍소

17대 총선을 3주가량 앞둔 2004년 3월 26일 정동영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장은 대구그랜드호텔에서 언론간담회를 가진 뒤 행사장을 나섰다. 이때 따라 나온 한 일간지의 인턴 대학생 기자가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요청하자 정 의장은 "촛불집회의 중심에 젊은이들이 있다. 이제는 20~30대의 무대"라며 청년 투표를 독려했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분(60·70대)들이 꼭 미래를 결정해 놓을 필요는 없다"며 "그분들은 어쩌면 이제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이제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덧붙였다. 총선 2주 전인 4월 1일 정 의장 발언이 보도되며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는 "20~30대가 투표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한 말이 거두절미됐다"며 유감을 표한 뒤, 이튿날 당사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사과하고 대한노인회 등 노인단체를 만나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정 의장은 나아가 총선을 사흘 앞둔 4월 12일 공동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를 사퇴하고 김부겸, 김영춘, 임종석, 송영길, 이종걸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선거일까지 시한부 단식을 벌이며 파문 진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수수사건에 휩싸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휘몰아친 것치고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1.16.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01.16. bluesoda@newsis.com

당시 열린우리당 핵심관계자는 "정 의장이 뒤늦게 사과했지만 이미 수습은 요원했다. 전국의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접고 경로당,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사과하기에 바빴다"며 "발언 파문 전만 해도 180석까지 가능하다는 전망이었지만 이러다 1당도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지경까지 갔다"고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당대표 시절 노인 폄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문 대표는 지난 2015년 12월 20일 '박근혜 정부 복지 후퇴 저지 토크콘서트'에서 "어르신 세대들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잘한다고 지지한다"며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어르신들에겐 없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흑인 향해 "얼굴이 연탄색"…"저출산 대책은 조선족"

지난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대표는 4.13 총선 목표로 180석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그해 1월 4일 서울시당 시무식에서 "망국법인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180석을 못 얻으면 우리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김 대표도 큰 설화를 자초했다. 그는 당 청년위원회 주선으로 2015년 12월 관악구 삼성동 일대에 연탄배달 봉사를 나갔다. 이날 행사에는 영남대학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 했다.

김 대표는 줄을 맞춰 릴레이 연탄 전달을 하던 도중 한 흑인 유학생을 향해 "니는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고 농을 던지며 웃었다. 한국말에 익숙치 않은 해당 학생은 김 대표의 발언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 인터넷매체에서 보도를 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연탄 배달 자원봉사 중 흑인 유학생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1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서 김무성 대표가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모습. 2015.12.18. dahora83@newsis.com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연탄 배달 자원봉사 중 흑인 유학생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사진은 1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서 김무성 대표가 연탄 배달 봉사를 하는 모습. 2015.12.18. dahora83@newsis.com

결국 김 대표는 행사 종료 2시간 30여 분 만에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에서 친근함을 표현한다는 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라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 함께 대화하며 봉사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의 입장을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김 대표는 중국동포(조선족) 비하 발언도 남겼다. 그는 2016년 1월 당 저출산대책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와 관련해 독일의 터키 이민자 유치 사례를 든 뒤, "우리는 문화적 쇼크를 줄이는 좋은 길이 있다. 우리나라 이민정책으로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족이 애 낳는 기계도 아닌데, '연탄색깔' 인종비하에 이은 조선족 비하"라고 꼬집었다. 새누리당은 그해 열린 4.13 총선에서 진박 공천, 옥새 파동이 겹치며 151석에서 122석으로 주저앉고 제1당 자리마저 빼앗겼다.

◇與, '장애인 인권교육·인권본부 설치' 대책

이 대표는 지난 16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장애인) 어느 쪽을 그렇게 낮게 보고 한 말은 아니었다"면서 "내가 (그런) 분석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한 말인데, 내 말로 인해 여러 가지 상처를 줬다고 하면 죄송하다는 말을 다시 드리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도 신속하게 진화에 나섰다. 남인순 최고위원은 17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실질적으로 당내에 인권 감수성 재고를 위해 여러 시스템을 마련하는 중에 있다"고 밝혔다.
문상필 전국장애인위원장도 ▲전 당직자 및 총선 출마자 대상 장애인 인권교육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내 인권본부 설치 등을 제안했다.

정치권에서 설화 논란은 평소에도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지만 특히 여야가 사활을 건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극도로 민감한 시기여서 각 당은 예방책 마련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실언, 망언의 공통점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많다"며 "노인 폄하라든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것이기에 (대중의) 분노지수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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