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병균 배양접시’ 된 크루즈…日정부 뒤늦게 "고령자 내려라"[현장르포]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3 18:11

수정 2020.02.13 21:08

[코로나19 비상]
요코하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44명 집단 감염 218명으로 늘어
美까지 나서 "감염자 많아 우려"
日정부 방역부실·인권침해 논란
13일 요코하마 다이코쿠 부두 내 크루즈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진=조은효 특파원
13일 요코하마 다이코쿠 부두 내 크루즈터미널에 정박해 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진=조은효 특파원

【 요코하마=조은효 특파원】 13일 정오를 넘긴 시간.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80대 초반의 한 일본 여성이 요코하마항 다이코쿠 부두로 들어섰다. 이 여성은 부두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를 가리켜 "저기 가족들이 있다"며 발을 동동거렸다. 다리가 불편한 듯 절름거렸지만 걸음은 재촉하듯 빨랐다. 취재진의 접근이 통제돼 있는 대기실로 향했으나 멀리 철조망을 통해 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기실 내에 앉지도 못하고 속이 타들어 가는지 바깥 공터에 서서 안절부절 서성였다.

'바이러스 배양 접시'라는 오명 속에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선 이날도 44명(일본인 29명·외국 국적자 15명)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인됐다.
지난 7일 41명, 10일 65명, 12일 39명 감염에 이은 네 번째 무더기 감염이다. 이로써 지난 3일 요코하마항 입항 이래 이날까지 이 배에서 확인된 코로나19 감염자는 218명이다. 크루즈선 내 감염자를 포함한 일본 내 전체 확진자는 총 247명이다.

日정부, 잇따른 오판
'코로나 크루즈선' 사태는 일본의 방역 구멍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초기 대응 실패와 비감염자에 대한 묻지마 선상 격리, 에어로졸을 통한 공기 중 감염 가능성 간과, 나아가 인권 침해 논란까지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3711명 '전원'에 대한 코로나 감염 검사를 실시하고, 즉각 육상으로 하선시켰다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초 탑승객 총 3711명(승객 2666명·승무원 1045명)가운데 218명(5.8%)이 감염됐다는 건 방역정책의 실패, 즉 '오판의 결과'라고 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전원 검사에 대해 미적대고 있다. 이 인원을 한꺼번에 다 검사하기가 쉽지 않고, 검사 후 육상에서 집단 격리를 실시해야 하는데 3700여명을 집단적으로 수용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선 시 감염자들을 일본 국내 집계로 잡아야 할 지 모른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중국처럼 여행 자제국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는 분석도 있다.

비난이 거세지자,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령에 지병이 있는 탑승자에 대해 코로나 검사를 실시해 음성으로 확인되면 우선적으로 하선시킬 계획"이라며 당초 잠복기가 끝나는 19일까지 승객들을 선내 대기시킨다는 방침에서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이 선박의 80대 이상 고령의 탑승자는 약 200명이다. 고령자들을 우선 추린다 해도 선내 추가 감염에 대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 크루즈선의 한 승무원(20대 일본 여성)은 요미우리신문에 "이대로 배 안에 있으면 전멸해버리는 건 아니냐"며 "빨리 전원 검역을 실시해 풀어주는 것 외엔 출구가 없다"고 호소했다.

외국국적자들 "풀어달라"요구 거세져
외국 국적의 승객과 승무원들은 자국에 구조요청(SOS)을 치고 있어, 점차 국제 인권 문제로 비화될 조짐 마저 감지된다. 참다못한 미국 질병 통제 예방 센터(CDC)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대해 "감염자 수가 많아 우려하고 있다"며 "선내에 있는 미국민의 안전이 확보되도록 일본 보건 당국과 긴밀히 협력 할 것"이라고 일본 정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CDC의 간부는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지 국무부와 주일 미국 대사관이 검토 중이다"고 전했다. 미국 ABC방송은 "중국 우한에 이어 일본 요코하마항이 제2의 감염 중심지가 되고 있다"며 "놀라운 사태"라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도 "일본 정부의 대응은 공중 보건 위기시엔 (일본에) 가지 말라는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해 선박의 자유로운 입항 허가와 모든 여행객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촉구하며 일본 정부의 이번 대응을 겨냥했다.


한편, 현재까지 이 배에 탑승한 한국인 국적자 14명 가운데 감염자는 없는 상황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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