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79년만의 만남… 징용 피해자 유골송환 ‘DNA분석’이 열쇠 [과거사 치유없이 사회통합 없다]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3 18:36

수정 2020.02.13 18:36

(下) 유전자 검사로 유해봉환 추진
남태평양서 사망한 故최병연씨
유골 5월 중순께 국내 송환키로
국과수 DNA 신원확인 큰 역할
인력·예산 등 지원 확보 시급
작년 한일 무역분쟁 등
국제정세 따라 차질 빚기도
79년만의 만남… 징용 피해자 유골송환 ‘DNA분석’이 열쇠 [과거사 치유없이 사회통합 없다]
79년만의 만남… 징용 피해자 유골송환 ‘DNA분석’이 열쇠 [과거사 치유없이 사회통합 없다]
고(故) 최병연씨는 1918년 전남 영광군에서 태어났다. 25세가 되던 해인 1942년 11월 25일, 병연씨는 아내 김화자씨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일제 군무원으로 강제징용됐다. 첫째 향주씨가 6살, 둘째 금수씨가 이제 막 태어난지 100일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병연씨 가족이 생이별 한 지 79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두 아들은 여든이 다돼서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됐다. 금수씨는 1943년 미국과 일본이 격렬하게 전투를 벌였던 남태평양 키리바시 공화국의 수도 타라와를 방문할 계획이다. 아버지 병연씨로 확인된 유골을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서다.


■79년만에 고국의 품으로

13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오는 5월 중순 군무원으로 강제징용돼 남태평양에서 사망한 고 최병연씨의 유골을 국내로 송환한다. 정부 주도로 일본과 연합군의 격전지였던 남태평양 일대에서 유해봉환이 추진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3월 중 송환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이 늦춰진 상황이다.

1943년 타라와 전투에 참전한 일본측 인원 4800여명 중 약 1200명이 한국인이다. 생환자는 단 160명뿐이어서 발굴되는 동양인 유골 중 3분의 1은 한국인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간 한국 정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서 일하는 한국계 진주연 박사가 이를 알려오면서 유해봉환이 급물살을 탔다. 유해봉환 주무부처인 행안부도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유해봉환과를 만들고 타라와를 오가며 미국과 협의를 진행했다.

직접 하와이와 타라와를 수차례 방문한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황동준 유해봉환과장은 "미군 관계자를 만나 일제강제동원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며 미 DPAA는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간 DPAA가 발굴한 아시아계 유골을 일본측에 넘긴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당시 일본측에 전달하지 않은 유골 152개를 한·미·일이 함께 유전자검사를 한 결과 향주씨와 금수씨가 79년전 떠나 보내야했던 아버지 고 최병연씨로 밝혀진 것이다.

■"경색된 한·일 관계 풀어낼 실마리"

그간 정부는 해방 이후 민간단체와 함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에 힘써왔다. 정부·민간 주도로 각각 총 9738명, 1345명을 한국으로 모셔왔다.

주요 유해봉환 대상지로는 △일본 전역 △러시아 사할린 △중국 해남도 △태평양 지역 등이다. 일본 전역에서만 1만998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사할린에서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1395명이 한국인으로 확인돼 현재까지 85명이 봉환됐다. 유해봉환 주무 부처인 행안부는 각 봉환 지역 국가들과 협조해 추가적인 실태조사와 봉환에 나설 계획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불안정한 외교적 여건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복잡한 외교방정식에 얽혀있는 국가들이 주요 대상이다보니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실무자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작년 한일 무역 분쟁이 대표적이다.

황동준 과장은 "매년 한·일 정부 실무자들이 만나 협의를 진행한다. 작년 한일 갈등이 고조될 당시에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일본에서는 처음에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만날 명분이 없어졌다"고 했지만 일본을 방문해 후생성, 외무성 실무자들을 만났다. 회의를 마칠 무렵 "차기 실무협의를 서울서 하자는 요청에 긍정적인 대답을 들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봉환에 힘써온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도 "유해봉환 문제는 한·일 관계 과거사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인데 일본 정부가 너무 소극적"이라면서 "외교부 협조 없이는 일본의 적극적인 자세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외교부가 유해봉환 의제를 대일 외교 우선순위에 올려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필요가 있다.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DNA 신원확인, 국과수 인력 보강돼야

한편 고 최병연씨 유해의 DNA 신원확인 등 유해봉환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과수는 향후 아시아·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해 발굴될 과거사 관련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의 신원확인 분석 업무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국과수에는 강력 사건 등 범죄 현장 분석의 감정 인력 이외에 과거사 관련 유해의 신원확인 등을 전담해 분석할 추가 인력이 없어 현재 분석 업무가 상당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강제동원조사법 등에 국가적으로 중요한 업무인 과거사 관련 피해자의 유해와 유가족의 DNA신원 확인을 국가기관인 국과수가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근거 법령을 마련하여 필요한 인력·예산 등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 이재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강제 동원된 희생자를 잊지 않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과 긴밀히 협의해 그간 일본, 러시아(사할린) 위주에서 중국, 태평양전쟁 격전지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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