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단독] '고열·기침' 無보고 선박 거짓말 확인... 과태료 '고작' 200만원?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5 14:00

수정 2020.02.15 13:59

'통신장비 고장' 변명했지만 해경엔 정상 보고
국립여수검역소 '고의 누락' 뒤늦은 확인
과태료 200만원... 솜방망이 처벌 비판
[파이낸셜뉴스] 고열·기침 유증상자 다수가 승선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고 입항한 아스팔트 운반선 BITUMEN EIKO호가 거짓말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통신장비 고장으로 보고할 수 없었다던 선박이 해경 관제센터와 수차례 교신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국립여수검역소(소장 소상문) 측은 해당 선박 선장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다만 유증상자 미보고 선박에게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가 낮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질병관리본부 국립여수검역소는 본지 보도 이후 해당 선박의 고의적인 보고 누락 사실을 확인해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출처=fnDB
질병관리본부 국립여수검역소는 본지 보도 이후 해당 선박의 고의적인 보고 누락 사실을 확인해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출처=fnDB

■해경에는 정상 보고, 검역소엔 ‘고장’ 핑계
15일 본지가 해양경찰청(청장 조현배)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5일 오전 광양항에 입항한 아스팔트 운반선 BITUMEN EIKO호가 광양항 입항 직전과 직후 해경과 교신을 했다. 5일 오전 3시 36분에 관제진입보고, 7시 47분에는 접안보고 기록이 남았다. 보고는 입항선박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VHF 장비를 통해 통상의 주파수대에서 이뤄졌다.

해경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통신장비 고장으로 환자 발생사실을 보고할 수 없었다’던 선박과 대리점인 남해해상 측 주장은 허위로 판명됐다. <본지 2월 8일. ‘[단독] 구멍 뚫린 항만방역... '발열·기침' 無통보 선박 거짓말 정황’ 참조>
본지 보도 이전까지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던 여수검역소 측은 해당 선박에 2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여수검역소 관계자는 “보도 이후로 정신이 없어서 사실관계 확인을 해보니까 (통신장비 고장이) 아닌 것으로 확인을 했다”며 “거짓보고 관련해 2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희는 (선박 통신) 시스템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문제 선박의 미보고가) 고의인지 몰랐다”며 “고의성이 있다는 얘기를 항만청을 통해 들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과태료 처분을 했다”고 말했다.

여수검역소와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지난달 28일 긴밀한 협조체계를 통해 코로나19 유입을 원천 방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불과 1주일 뒤 발열·기침 환자를 태운 배가 광양항에 보고 없이 입항해 논란이 됐다. 사진은 광향항 컨테이너 부두. 출처=fnDB
여수검역소와 여수광양항만공사는 지난달 28일 긴밀한 협조체계를 통해 코로나19 유입을 원천 방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불과 1주일 뒤 발열·기침 환자를 태운 배가 광양항에 보고 없이 입항해 논란이 됐다. 사진은 광향항 컨테이너 부두. 출처=fnDB

■200만원 과태료로 ‘철통보안’?
여수검역소가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하지만, 고열·기침 환자가 3명이나 있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기고 거짓보고를 한 선박에 고작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한 처벌이 합당하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역법은 검역감염병 환자 유무를 검역당국에 통보하지 않은 운송수단의 장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검역법 시행령은 보다 구체적으로 개별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200만원이다.

다만 검역소장은 위반행위의 정도, 위반행위의 동기와 결과 등을 고려해 과태료를 개별기준의 50%까지 높일 수 있다.

여수검역소는 문제 선박에 기준치 과태료인 200만원만 부과했다. 문제 선박이 통신장비 고장이란 거짓말까지 했음에도 법이 허용하고 있는 가산 없이 과태료 200만원 처분만 내린 건 검역당국의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과태료 200만원이 실효성이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항해사는 “환자가 있다고 보고하면 자칫 입항이 늦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선석 임대부터 다음 운항일정까지 빡빡한 배가 보고를 안 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며 “과태료 200만원의 처벌규정만 갖고서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감염병을 원천봉쇄하겠다고 홍보하고는 뻔한 거짓말에 다 뚫려버린 것 아닌가”라며 “과태료를 현실화하지 않고는 비슷한 사례를 막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법조계도 비슷한 시각이다. 한 변호사는 "최근 일련의 사태들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과태료만 부과한 것이라면 대체 가중 부과할 수 있는 사유는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의문"이라며 "과태료를 통한 의무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에도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5일 오전 싱가포르 국적 아스팔트 운반선 BITUMEN EIKO호가 발열 등 유증상자 3명을 태운 채 보고 없이 광양항에 입항했다. 해당 선박은 중국을 거쳐 현재 울산항에 입항한 상태다. 출처=fnDB
5일 오전 싱가포르 국적 아스팔트 운반선 BITUMEN EIKO호가 발열 등 유증상자 3명을 태운 채 보고 없이 광양항에 입항했다. 해당 선박은 중국을 거쳐 현재 울산항에 입항한 상태다. 출처=fnDB

■울산검역소 “사실 맞는지 확인 했어야”
싱가포르 국적 BITUMEN EIKO호는 지난 5일 오전 고열 또는 기침 환자 3명을 태운 채 검역당국에 보고 없이 광양항에 입항했다. 지난달 23일 중국 닝보, 28일 필리핀 바탄(Bataan)을 거쳐 중국 출항 채 14일이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직전 출항지가 필리핀으로 승선검역 대상에서 배제됐다.

문제가 된 선원 3명은 여수검역소가 작성한 서류를 검토한 질병관리본부 소속 의사로부터 코로나19와 관련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해당 선박은 6일 광양을 떠나 중국 항구 두 곳을 거쳐 14일 오후 울산항에 접안한 상태다.

국립울산검역소(소장 김순희)는 14일 해당 배에 승선해 검역한 결과 3명 선원 모두 상태가 양호했다고 확인했다. 직전 항이 중국인 관계로 선박 밖으로 외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혹시 울산항에선 비슷한 사건이 없었는지 문의하자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울산검역소 측에 광양항에서 발생한 문제를 설명하고 비슷한 경우 어떻게 조치가 되는지를 묻자 “만약 통신장비가 고장 났다고 주장하더라도 다른 루트를 통해 (주장이 맞는지) 확인을 한다”며 “고장 났다고 해도 다른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이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고, 우리는 그렇게 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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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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