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룸살롱 애들 뽑으려 했는데" 노동법 사각지대 방치된 노동자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02 14:51

수정 2020.07.02 14:51

코로나19 이후 부각된 노동법 사각지대
파견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에 무방비
방치된 프리랜서 임시 고용 넘쳐나
5인 미만 사업장은 사실상 규제 無
"입증책임은 사용사업주가 져야"
[파이낸셜뉴스] "원래 룸살롱 애들을 뽑으려고 했는데, 예뻐서 뽑았어."
20대 여성 A씨가 입사한 회사에서 면접 이후 들었던 말이다. B씨와 함께 지난해 한 회사에 입사한 A씨는 입사 이후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외모에 대한 평가부터 성희롱까지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 지속됐다. 회사는 파견업체 소속인 A씨와 B씨 외에는 정규직 남성들로 구성돼 있었다. 두 여성이 견디다 못해 문제를 제기하자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퇴사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린 여성들은 오랜 고민 끝에 소송을 접었다.
파견업체 소속으로 원청이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란 점, 지난한 소송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유였다.

파견노동자와 프리랜서 임시직 등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들은 폭언과 막말에도 저항하기가 어렵다. fnDB
파견노동자와 프리랜서 임시직 등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들은 폭언과 막말에도 저항하기가 어렵다. fnDB

2일 업계 등에 따르면 A씨와 B씨의 사례는 특수한 게 아니다. 한국엔 파견업체를 통해 일반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상당수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사무 지원 종사자의 업무'를 파견가능 업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청 사용주의 의사에 따라 쫓아내면 파견업체와도 계약이 자동 해지되도록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아 노동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법적으로 실제 원청의 지시·감독을 받는 노동자라는 걸 본인이 입증해야 하지만 과정은 지난하고 전례는 드물어 견디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A씨와 B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관할 노동청에 부당해고로 진정을 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성희롱'은 맞지만 그 때문에 불이익한 결정이 나온 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원청이 고용과 해고를 했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후 싸움을 이어갈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A씨와 B씨를 대리해 소송을 해보려 했던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파견업체를 통해서 일을 하는 분이나 여성으로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분들을 통해서 소송을 해보고 싶었다"며 "판결이 많이 없어서 선례를 남기고 싶었지만 당사자들이 어려워해 어쩔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현행법이 '사무 지원 종사자' 외에도 컴퓨터 관련 전문가 및 준 전문가, 기록 보관원, 번역가 및 통역가, 수금 및 관련 사무 종사자 등 파견가능 업종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열악한 지위의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의 사례와 같이 부당한 행위를 당해도 어쩌지 못하는 노동자가 생기는 배경이다.

2018년 5인 미만 사업장 개수 및 재해율
(개, %)
개수 재해율
5인 미만 사업장 193만 1.07
전체 사업장 265만 0.54
(고용노동부)

파견근로자 외에도 프리랜서 명목으로 임시 고용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른 직원과 같은 직장에서 비슷한 업무를 보지만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4대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당연히 문제가 터져도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이들의 존재는 코로나19 이후 드러났다2일. 노동법 저편에 숨어 있는 열악한 노동자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워진 업체들에 의해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아들었다. 노동위를 통한 구제신청이 가능하지만 근로자라는 걸 입증하는 게 만만치 않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불가능하도록 한 법규도 문제다. 전체 직원은 45명인데 법인을 10개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만들어놓은 업체까지 발견됐다.
법적으로 보면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하지만 하나의 회사라는 걸 입증하는 게 또 일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규모가 영세하고 근로감독이 어렵다는 점에서 적용을 면제했지만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것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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