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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수술 공판서 '협진' 언급에 재판장 "협진 아냐"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05 15:16

수정 2020.12.05 15:15

1일 서울중앙지법 유령수술 항소심 공판
증인신문 중 "협진 내용 봤냐" 연속 질문에
"협진이라 하기에 적절치 않다" 상황정리
[파이낸셜뉴스] 2014년 불거진 유령수술 논란 장본인인 G성형외과 전 원장 유모씨(48) 항소심 공판에서 유씨 측이 ‘협진’을 언급하다 재판부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유령수술을 협진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입장이 재확인된 것이다.

공판에 앞서 유씨를 고발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간부들도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해 문제가 된 수술이 협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 최한돈 재판장이 유령수술 항소심 공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협진'을 설명하는 피고인 측 대리인을 제지하고 사안이 협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 최한돈 재판장이 유령수술 항소심 공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협진'을 설명하는 피고인 측 대리인을 제지하고 사안이 협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사진=서동일 기자

■피고인 측 '협진' 설명에 재판장 "협진 아냐"
5일 법원에 따르면 2014년 G성형외과에서 이뤄진 유령수술 실태를 조사한 대한성형외과 의사회 전 간부들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최한돈 재판장)에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엔 G성형외과에서 벌어진 유령수술을 협진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담겼다.

유씨 측은 수년에 걸친 1심 재판 과정에서 문제가 된 수술이 유령수술이 아닌 협진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안면윤곽수술 및 턱수술 등은 수술 특성상 성형외과 외에도 구강악안면외과, 치과 등 전문의의 참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상담을 하고 실제 수술을 구강악안면외과나 치과 전문의가 참여하더라도 정상적인 의료행위인 협진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 사기죄의 성립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사기죄 성립을 위해선 피고인이 재산상 이득을 취하려는 의사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익 극대화가 아닌 협진 목적이 인정될 경우 혐의가 부인되거나 일부 조각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 않느냔 것이다.

실제 지난 1일 진행된 항소심 3차공판 증인신문에서도 피고인 측은 수차례 협진을 언급해 관심을 모았다.

유씨를 고소해 1심에서 법정구속을 이끈 피해자 35명 가운데 한 명으로 증인석에 선 박모씨를 상대로 유씨 측 변호인은 협진에 대해 거듭 언급했다. 이 변호인이 “인터넷에 보면 (G성형외과에서) 협진을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보셨나”고 물은 뒤 “모른다”는 답이 나오자 협진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 것이다.

변호인의 발언은 재판장이 직접 개입해 “그건 협진이라고 하기에 적절치 않지 않느냐”고 제지할 때까지 지속됐다. 변호인은 이후에도 “G성형외과에 구강전문의가 많은 걸 알고 있었느냐” “기사를 검색하면 구강쪽이랑 협진을 한다는 내용 (나오는데) 못 봤느냐”고 질문을 이어갔다.

의료계에서조차 유령수술 및 대리수술을 협진으로 주장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fnDB
의료계에서조차 유령수술 및 대리수술을 협진으로 주장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fnDB

■재판장 직접 개입 시사점 커
이날 재판장이 직접 개입해 문제가 된 수술을 협진으로 보기 어렵다고 발언한 점은 항소심 판결을 내다볼 수 있는 단서로 평가된다. 협진이 피고인 측이 지속적으로 내세워온 근거란 점에서 특히 그렇다.

법조계 및 의료계에서도 해당 수술방식을 협진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문재식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협진은 자신의 전문분야에 해당하지 않는 의료행위를 다른 과목 의사에게 요청하는 것”이라며 “문제가 된 윤곽수술은 일부 잇몸 뼈 등 치과과목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뼈에 대한 절골이나 절제와 같은 외과적 수술행위가 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치과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를 대리하여 윤곽수술에 대한 일체의 수술행위를 하는 것은 협진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문 변호사는 이어 “아주 만약 협진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죄명은 사기로 기망행위가 구성요건”이라며 “성형외과 전문의인 피고인이 직접 상담까지 하여 수술을 직접 집도한다는 것으로 믿게 하였고 환자들은 피고인으로부터 수술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다른 의사가 수술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수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치아의 교정 등을 위한 수술이 아니라 미용을 위한 성형 수술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치과의사가 대리하여 수술을 시행한다는 점을 고지하지 않은 점은 기망행위임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본지 11월 14일. ‘[단독] '마취된 뒤 의사 바꾸기' 法 "피해자에 9000만원 배상하라"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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