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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재심서 ‘무죄’ 31년전 낙동강변 살인…진범은 누구?

뉴스1

입력 2021.03.01 07:01

수정 2021.03.01 16:38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 중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2021.2.4/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 중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2021.2.4/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지난 2월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에 방송된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행 현장.(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뉴스1
지난 2월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에 방송된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행 현장.(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뉴스1


김일규 전 부산일보 기자가 지난 2월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와 당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습.(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뉴스1
김일규 전 부산일보 기자가 지난 2월20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에 나와 당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습.(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캡처)© 뉴스1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당시 변호사 선임 서류를 공개하고 있다. 빨간 원 안은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과 날인. 2020.1.6/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당시 변호사 선임 서류를 공개하고 있다. 빨간 원 안은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과 날인. 2020.1.6/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개시 재판을 마친 후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2020.1.6/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개시 재판을 마친 후 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2020.1.6/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부산=뉴스1) 박세진 기자 = 지난달 4일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 앞은 오전부터 취재진과 방청객들로 북적였다. 이날은 31년 전 부산 북구 엄궁동에서 발생한 일명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중년의 두 사람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두 사람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아 온 이들의 한을 가리지는 못했다.

부산지법은 이날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인철씨(60)와 장동익씨(6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었다.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발견된 30대 여성 시신

사건은 지난 1990년 1월4일 새벽 발생했다. 몹시도 추웠던 겨울,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3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상의와 속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는 반쯤 벗겨진 상태로 성폭행 범죄가 의심됐다.

목격자는 당시 낙동강변에서 숨진 여성과 '카데이트'를 하던 30대 남성 A씨였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여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량 뒷좌석에 있던 자신을 괴한들이 덮쳤고 다시 돌아온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A씨는 범인 중 한명과 낙동강 물에서 격투 끝에 손목을 묶고 있던 공업용 테이프가 풀리면서 도망쳐 인근으로 몸을 숨겼다고 말했다. 범인들이 자신의 상의를 벗겨 몸을 결박하려고 하자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직접 말해줬다고도 진술했다.

이날 나온 결정적인 증거는 A씨의 진술이었다. 별다른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6개월간 수사를 벌였지만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치정에 의한 청부살인?…당시 알려진 사건은

이 사건은 치정으로 비롯된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A씨와 여성이 외도를 해 벌어진 청부살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했던 기자는 당시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당시 김일규 부산일보 기자는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문점을 보도했다. Δ도주한 범인들이 차량을 이용하지 않은 점 Δ범인들에게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알려줬다고 말한 A씨의 진술 등이었다. 김 기자는 사건 당일 당직 경찰관의 "큰일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김 기자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A씨의 진술이 맞다면 낙동강 물에서 격투를 벌여서 옷이 다 젖었을 텐데 그 혹한의 추위 속에 차를 버리고 달아난 게 의심스러웠다"며 "당시 사건 현장에서 도로까지 1km가량 떨어져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범인들에게 A씨가 굳이 차량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말해준 점과 이를 이용해서 자기 손을 결박했다는 점 등이 상식적으로 선뜻 납득이 가질 않았다"고 말했다.

◇가혹한 고문에 털어놓은 거짓자백…외면한 檢·法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이 사건은 사건 발생 1년10개월 뒤 변환점을 맞는다. 최씨와 장씨가 등장하면서다. 당시 최씨는 북구가 아닌 사하구 을숙도에서 '부산시 자연보호 명예감시관'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1991년 11월 사하경찰서는 을숙도 공터에서 무면허로 운전교습하던 중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뺏겼다는 신고를 받고 최씨를 붙잡았다. 최씨가 얼떨결에 받은 3만원이 화근이 됐다.

경찰은 최씨를 불법 임의동행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고문과 함께 '공범이 있었지 않냐'는 추궁에 최씨는 친구였던 장씨를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두사람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시 부산 중부경찰서 한 순경이 최씨와 장씨로부터 강도를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진술이 A씨의 진술과 상당 부분 일치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진범으로 의심받는데 역할을 했다.

최씨와 장씨는 수사 과정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한결 같이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을 주장했다. 폭행, 물고문, 쇠파이프에 다리를 끼워 거꾸로 매다는 행위,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 등의 일들을 호소했다. 최씨는 "쇠파이프가 휘어질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법원은 두 사람의 호소를 외면했고,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2심부터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변호사 시절 이들을 변호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해 "35년 변호사 생활 중 가장 한으로 남는 사건"이라 회상하기도 했다.

◇21년간 옥살이…이후 열린 재심에선 '무죄'

2013년 두 사람은 21년 간 수감 생활을 끝으로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이후 이들은 재심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장씨의 모친이 끝까지 가지고 있던 '사건기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심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당시 수사를 담당한 경찰들과 검사를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두 사람을 기소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담당 검사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법원이 총 9차례에 걸쳐 해당 검사에게 증인 소환장을 보냈으나 모두 '폐문 부재' 혹은 '이사 불명'이란 이유로 전달되지 않았다. 폐문 부재란 '문이 잠겨 있고 사람도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12월10일 검찰은 두 사람에게 모두 '무죄'를 구형했다. 이후 지난 4일 법원도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씨가 공무원을 사칭해 3만원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고문을 받은 상황에 대한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당시에 같이 수감돼 있었던 이들의 진술 등을 보면 피고인들의 주장이 상당히 진실된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혹행위를 받았다면 경찰에서 했던 자백 진술은 모두 허위 자백으로 증거능력이 없고 검찰 피의자 심문이 진술 거부권이 고지된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객관적 자료도 없다"고 밝혔다.

◇경찰의 뒤늦은 사과…재수사는 사실상 어려워

무죄 선고 다음날 경찰청은 "당시 수사 진행과정에서 적법절차와 인권중심 수사원칙을 준수하지 못한 부분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로 인해 재심 청구인 등에게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경찰이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누명을 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당시 공개한 사과문 내용과 상당 부분이 겹치면서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죄 선고 이후 장씨는 "15만 경찰 조직과 검찰 역시 각성해야 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확실히 구별하고 형을 집행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최씨는 "다른 사건은 다 기억한다면서도 우리 사건만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고문 경찰관들을 어떻게 용서하는가"라며 "이들은 우리에게 '악마' 같은 존재다. 절대 용서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변호사는 "법정에 나온 경찰, 고문하지 않았다고 말한 경찰들을 위증으로 고소하고 국가배상청구소송의 피고로 삼을 생각도 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두 분에게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 두분의 닫힌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수사는 어려울 전망이다.
강도살인 공소시효 15년이 일찌감치 끝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진범이 나타나 자백을 하지 않는 한 사건은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유일한 목격자인 A씨는 현재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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