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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두 수장 다툰 전금법 논란, 소비자 보호가 먼저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03 18:00

수정 2021.03.03 18:01

[테헤란로] 두 수장 다툰 전금법 논란, 소비자 보호가 먼저
"전금법 개정안은 '빅브러더법'이 맞다."(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지나친 과장이다. 화가 난다."(은성수 금융위원장)

전자금융법 개정안을 둘러싼 두 수장의 발언은 지난 2월 금융계를 달궜다. 정무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전금법 공청회 모두발언에서 이주열 총재를 겨냥했다. 그는 "한국은행의 장(長)이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총재'의 자리에 '장'이라는 표현을 일부러 쓴 모양새다.

전금법 개정안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두 수장이 감정싸움을 했을까. 지난해 윤 의원이 발의한 전금법 개정안은 300쪽이 넘는다. 이를 아주 쉽게 말하자면 전자금융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오픈뱅킹과 전자지급거래청산업을 제도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청산의 개념은 어렵지 않다. 쌍방 간 거래가 오갈 경우 채권·채무관계를 따져 최종적으로 오갈 돈만 명확히 밝히는 절차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A은행이 B은행에 100만원을 줘야 하고, B은행이 A은행에 50만원을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과적으로 A은행이 B은행에 50만원만 주면 된다. 쌍방 간 여러번 돈이 오가야 하는 복잡한 거래를 단순화해 정리하는 셈이다. 이 청산 과정에 외부기관인 금융결제원이 끼여있고, 한은이 이를 감독해왔다.

전금법 개정안은 금융위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내부 청산업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빅테크 기업끼리 외부청산뿐 아니라 내부거래를 통한 청산도 금융결제원을 통하게 하고, 이를 금융위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 부분에 대해 여러 차례 금융위에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결제원 감독권한을 둘러싸고 한은의 감독권한이 침해당한다고 볼 소지는 있다. 이주열 총재의 '빅브러더법'이라는 발언은 전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두 기관의 갈등이 촉발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말 한마디로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안타깝다. 개정안 자체가 감독영역을 놓고 두 기관이 다투는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서다. 두 수장이 다툰 후 금융노조도 가세했다. 이번엔 '네이버 특혜법'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법안 이름에 별칭을 붙이면 핵심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 별칭에 의도를 담으면 법안 취지는 가려지고 논란의 불씨만 남는다.

개정안엔 이런 내용도 있어 하나 소개한다. '국내외 빅테크의 금융산업 진출에 대한 관리감독체계 마련'이라는 항목이다. 국외에 있는 빅테크가 전자금융 업무를 하게 되면 국내에는 현지법인이나 지점, 영업소를 설치하고 허가나 등록을 받도록 해야 한다. 개정안 자체가 소비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이런 내용은 당연히 들어가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알리바바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한국에서 대거 수익을 올리고 사고가 난다면 현재 법 수준으로는 국내 소비자 보호가 어렵다.
그런 큰 그림을 봐달라"고 기자에게 호소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3일 기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기관 간 밥그릇 싸움은 해서도 안되고, 할 생각도 전혀 없다"면서 "한은과 8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고, 앞으로도 열린 자세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말다툼보다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더 진지한 논의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ksh@fnnews.com 김성환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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