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사회

방역성공의 저주, 아·태 국가들 백신에서는 크게 뒤져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7 05:13

수정 2021.04.17 05:13

[파이낸셜뉴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2월 17일(현지시간) 수도 웰링턴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아태국가들은 방역 성공 자신감이 되레 화가 돼 백신접종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로이터뉴스1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2월 17일(현지시간) 수도 웰링턴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를 비롯한 아태국가들은 방역 성공 자신감이 되레 화가 돼 백신접종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 로이터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성공의 자만감 때문이었을까.

뉴질랜드, 호주, 태국, 대만, 한국, 일본 등 코로나19 방역에서 미국·유럽과 달리 비교적 성공한 나라들이 백신 접종에서는 크게 뒤지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CNN이 16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100여개국을 대상으로 연초 코로나19 성과를 점수화한 바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전세계에서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성공적인 지역이었다.


뉴질랜드는 외국에서 들어와 방역시설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이들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약 2500명, 사망자 수는 26명에 불과했다.

반면 가장 최악의 성과를 낸 곳은 유럽과 미주 지역이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 지도자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대응을 망쳐 이들 두 나라가 재앙적인 결과를 맞았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역전됐다.

미국과 영국은 대규모 백신 접종으로 이제 집단 면역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는 반면 아태 지역 국가들은 방역 성공을 뒤로하고 백신 접종에서 뒤처지고 있다.

CNN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최소 1차례라도 백신을 맞은 이들의 비율은 이미 37%에 이른다. 이 속도라면 올 여름에는 집단면역이 가능할 전망이다. 전체 인구의 70~85%가 백신을 접종하면 집단면역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에서 최초로 지난해 12월 백신을 승인한 영국은 그 비율이 47%로 미국보다도 높다.

그러나 뉴질랜드, 태국, 대만, 한국, 일본 등 방역에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은 백신 접종률이 4%에도 못미친다.

당초 올 연말까지 전 국민 백신접종을 완료하겠다던 호주는 이제 어떤 목표도 세우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도 한국 등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아 지난 12일 현재 전체 인구의 5%를 조금 밑도는 120만명이 접종을 받았다.

뉴질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수가 2번째로 적은 나라가 됐다.

아태국가들이 백신 접종에서 뒤지는 가장 큰 요인은 이들 국가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좀 더 느긋해 서둘러 백신 업체들과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ING의 아태지역 리서치 부문 책임자인 로버트 카넬은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19 통제불능 상태에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백신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것이 열매를 맺은 반면 아태 국가들은 주판알을 튕기다 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지난해 5월 아스트라제네카와 1억회분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고, 7월에는 화이자 백신 3000만회분을 포함해 9000만회분을 추가했다. 이들 업체와 계약을 맺은 최초의 나라가 영국이 됐다.

미국도 7월 화이자와 6억회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들이 계약을 맺을 당시 영국 사망자 수는 4만1000여명, 미국은 14만명이 넘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대 공중보건 겸임교수인 빌 보텔은 영국과 미국은 절실했지만 아태국가들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았다면서 호주의 경우 백신 공급 계약을 맺을 때에도 영국처럼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백신 후보군을 좁혀 위험을 충분히 분산시키지 못했고, 지금 그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방역 성공은 백신 실패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

뉴질랜드 백신 접종은 '난장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호주의 백신 접종은 '실패'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번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부의 백신 확보 실패를 비난했다.

각 정부는 군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한국 질병관리청(KDCA)은 부작용 우려로 백신 접종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고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호주가 백신 접종에서 '앞 자리'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상황이 시급한 다른 나라가 우선 접종토록 양보하고 있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팬데믹 초기 5주간 전면 봉쇄 뒤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거의 팬데믹 이전 생활로 돌아갈 정도로 방역에서는 성공해 이같은 주장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태국가들을 비롯해 백신 접종에서 차질을 빚고 있는 나라들이 있는 한 전세계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전세계가 골고루 백신 접종을 끝내야 집단면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조지프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등 노벨상 수상자·전직 정부 수반 170여명은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백신 생산 확대를 위해 백신 특허권을 일시 중단하자고 촉구한 바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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