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엉터리 악보 유통 참담… 동의 없는 악보변형, 창작자 정신 해쳐" [유명무실 저작권]

김지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9 17:49

수정 2021.06.09 17:49

<4> 무단 편곡으로 고통받는 저작권자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피아노곡
멋대로 편곡한 커버곡 악보가 퍼져
이영훈 작곡가 저작권 침해 수백 건
밴드 스탠딩에그 "악보 수준 엉망
저작권자가 검수한 악보 유통돼야"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중 리정혁(현빈 분)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 tvN 제공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중 리정혁(현빈 분)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 tvN 제공
'광화문연가' 등 히트곡 다수를 남기고 2008년 타계한 고 이영훈 작곡가. fnDB
'광화문연가' 등 히트곡 다수를 남기고 2008년 타계한 고 이영훈 작곡가. fnDB

피아니스트 이루마씨가 법적 대응에 나선 걸 시작으로 음악계에선 무단 편곡 문제에 칼을 빼들 조짐이다. 원곡에 대한 보존과 개작 시 정당한 대가 지급이 이뤄지는 풍토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단 편곡 문제로 고통받는 세 명의 저작권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혜승 감독 "원곡 훼손, 가장 큰 문제"

남혜승 음악감독은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등 국내 유명 드라마 다수에서 음악을 맡은 베테랑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을 많이 맡다보니, 쓰인 음악이 여기저기 퍼져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 감독은 무단편곡을 '원곡 훼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남 감독은 "드라마 음악의 악보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통제할 방법이 법적으로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며 "해당 악보들은 유형도 제각각이고 원작자 의도와도 다르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까지 빈번해 '악보가 엉망이다'라는 소리를 듣는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대표적인 게 <사랑의 불시착>에서 리정혁(현빈 분)이 연주한 피아노곡이다. 드라마 특성상 음원이 공식 출시되기 전 드라마에서 일부만 공개됐는데, 유튜브에선 커버곡이라며 뒷부분을 전혀 다르게 만들어 올렸고 그게 악보로 만들어져 퍼져나갔다. 남 감독은 "원곡과 아예 다른 곡으로 변질돼 '사랑의 불시착 삽입곡'이 돼버린 것"이라며 "뒷부분이 드라마에서 노출되기 한참 전의 일로 명백한 권리침해라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방영 이후 남 감독에겐 "내가 지금까지 듣던 곡이랑 왜 다르냐" "제목이 왜 바뀌었느냐"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놀랍게도 베테랑 음악감독인 남 감독에게 이런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이정환 본부장 "창작 몰입하기 어려워"

고 이영훈 작곡가는 가수 이문세씨의 히트곡 대부분을 작곡한 팝발라드의 거목이다. '광화문연가' '가을이 오면' '소녀' '붉은 노을'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리는 명곡 여럿이 이 작곡가의 손에서 태어났다.

이 작곡가가 2008년 세상을 떠나며 그의 저작권은 아들인 이정환 영훈뮤직 본부장에게 승계됐다. 저작권법은 이 작곡가 사후 70년인 2078년까지 그의 권리를 보장한다.

이 본부장은 저작권을 무분별하게 침해하는 이들에게 꾸준히 대응하려 노력해왔다. 멜로디가 바뀌고 가사를 틀리게 적고, 원작자 이름을 아예 표기하지 않는 등 침해사례도 다양했다. 그가 확인한 것만 최근 6개월 간 수백 건에 이르렀다.

침해를 놔두고 볼 수 없었던 이 본부장은 침해한 이들과 각각 접촉했다. 때로는 개별적으로 대화하고 때로는 법적 대응까지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다. 이 본부장은 이루마씨의 법적대응을 두고 "겪어 본 사람으로서 매우 슬픈 현실"이라고 탄식했다. 이어 "작곡가가 창작 활동에 시간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며 "침해로부터 보호 받고 창작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탠딩에그 "정확한 악보의 가치"

활동한 지 11년 된 인디밴드 '스탠딩에그'는 불법 유통과정에서 더 유명세를 탔다. 스탠딩에그 역시 처음엔 밴드와 곡이 더 알려지는 계기로 받아들였다.

스탠딩에그는 "처음에는 밴드·곡을 더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유포자들이 덜 유명한 뮤지션을 홍보하기 위해 불법 유포를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저작권이 보호된다면 조금만 알려져도 음악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고, 그게 문화적으로 건강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무단 편곡의 수준도 지적됐다. 스탠딩에그는 "검수를 거치지 않은 악보들이 퍼지다보니 그 수준도 천차만별"이라며 "(나도는 것 중에) 엉망인 것들도 많아서 저희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하는 분들께 엉터리 악보가 전해진다는 것이 매우 속상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스탠딩에그는 이어 "우리가 바흐나 베토벤의 음악을 지금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그 악보들이 정확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라며 "시중에 저작권자가 제대로 검수한 악보를 유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악보 원본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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