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의 특급논설] 정년을 없애자, 단 임금피크제는 필수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15 10:09

수정 2021.07.1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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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60세 연장법 통과
대선 앞두고 65세 솔솔

해법: 청년이 정년 양보하면
기성세대는 호봉제 버려야

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65세 연장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장년층이 주축인 기득권 노조와 청년층이 일자리를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사진=뉴스1
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 노조를 중심으로 정년 65세 연장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장년층이 주축인 기득권 노조와 청년층이 일자리를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형국이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정년연장 이야기가 솔솔 나온다. 정부도 말하고 노조도 말한다.
청년들은 반대다. 세대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해법은 없을까.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다. 65세 정년 이야기를 해보자.

◇"정년 늘려야 한다"

범정부 제3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TF)는 지난 7일 '인구구조 변화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고령자 고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에둘러 말했지만 정년을 연장하자는 뜻이다. 명분은 인구절벽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인구정책TF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범정부 기구다.

앞서 2019년에도 TF는 계속고용제 도입의 운을 띄웠다. 계속고용제는 일본이 모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계속고용이란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촉탁, 재고용, 파트타이머, 계약제 노동자 등으로 계속 고용하는 것을 가리킨다('정년연장의 의의와 입법 및 정책과제'·2013년). 일본은 계속 고용해야 하는 연령의 하한선을 2006년 62세부터 2013년 65세까지 점차 끌어올렸다.

정부는 정년연장을 통해 두가지를 추구한다. 먼저 부족한 노동력 확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26년 고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이 총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세계 최저 출산률을 고려할 때 빈 자리를 메울 신규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년을 5년 늘리면 이 공백을 꽤 메울 수 있다.

또 다른 목적은 재정건전성이다. 나라 곳간을 책임진 기획재정부의 눈으로 볼 때 초고령사회는 복지비 탈 사람은 많고 소득세 낼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정년을 늘리면 근로소득세를 더 많이 거둘 수 있다.

노조는 정년연장에 대찬성이다. 현대차를 비롯해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40~50대 중장년층 노조원이 주축이다. 이들에겐 정년연장이 코앞에 닥친 현안이다.

현대차 노조는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년연장을 도입한다면 사회적으로 칭찬받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없지 않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2023년 63세, 2033년 65세로 높아진다. 지금처럼 60세에 은퇴하면 길게는 5년 소득공백이 생기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부실한 노후복지를 고려할 때 일자리야말로 가장 확실한 복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 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지난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인해 민간사업체에서 고령층(55~60세)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감소했다"고 분석했다./자료=KDI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 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지난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로 인해 민간사업체에서 고령층(55~60세) 일자리는 증가한 반면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감소했다"고 분석했다./자료=KDI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

◇부글부글 끓는 청년층

청년들은 부글부글 끓는다. 정년이 느는 만큼 신규 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6월 국회에 고령자고용법 개정을 촉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그러자 곧바로 청와대에 정년연장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완성차 3사에서 일하는 MZ세대라고 밝힌 청원인은 "정년 연장은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고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청년 실업을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MZ세대는 2030세대와 대략 일치한다.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5월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2016년부터 시작된 60세 정년연장 효과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종업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경우 정년 연장의 수혜자가 1명 증가하면 실제 고령층 고용이 1명 늘었다. 거꾸로 청년층 고용은 1명 줄었다. 대기업 같은 좋은 일자리를 놓고 고령층과 청년층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통인 윤희숙 의원(국민의힘)은 7월초 대선 출사표에서 "제대로 된 정부라면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개혁합시다'라고 국민을 설득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본질적으로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이고 귀족노조와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60세 연장은 어땠나

2012월 4월 총선,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현 국힘)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50대 파워를 실감했다. 표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정치다. 두 당은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힘을 모았다. 2013년 봄 국회는 정년 60세 연장법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개정법은 2016년 대기업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최대 수혜자는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이다.

이때도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 보완책으로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국회는 정년만 늘렸을 뿐 임금피크제는 두루뭉술 넘어갔다. 노조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그저 노사에 대해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19조의2)고 했을 뿐이다. 이런 조항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현대차 노조는 정년을 연장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국민연금 공백을 든다. /자료=현대차 노조 소식지 2021년 7월9일자.
현대차 노조는 정년을 연장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국민연금 공백을 든다. /자료=현대차 노조 소식지 2021년 7월9일자.


◇65세 연장은 어떨까

65세 연장은 8년 전 60세 연장만큼 쉽진 않을 것 같다. 청년들이 눈을 번쩍 뜨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된통 당했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이기려면 2030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국힘에선 30대 당대표가 나왔다.

다만 50~60대 인구가 20~30대 인구를 앞지르는 것은 팩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연령대별 인구 분포를 보면 50-40-60-30-20대 순이다. 60대가 20대와 30대를 앞지른 것은 처음이다. 정치권은 표 계산에 분주할 것 같다. 50·60대는 정년연장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40대들도 정년이 높아지는 게 나쁠 게 없다. 2030년 청년들, 긴장해야 한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 통계(6월말 기준)에 따르면 40~50대 인구는 1681만명으로, 20~30대 1352만명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통계(2021년 6월말 기준).
행정안전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 통계(6월말 기준)에 따르면 40~50대 인구는 1681만명으로, 20~30대 1352만명을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연령별 인구통계(2021년 6월말 기준).

◇해법은 뭔가

모든 세대를 만족시킬 해법은 없다. 세대 간 타협이 불가피하다. 2030이 정년연장에 동의하고 대신 5060이 노동개혁, 특히 임금체계 개편을 받아들이면 타협이 가능하다.

냉정하게 보자. 정년연장 논리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고령층 취업은 인구절벽 시대를 사는 지혜다. 나라 재정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다가 요즘 60대는 예전과 다르다. 단군 이래 환갑 이후에도 활력이 넘치는 첫 세대다.

대신 노조와 5060 세대는 두가지를 내놓아야 한다. 단기적으론 임금피크제 수용이 필수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사회학)는 저서 '불평등의 세대'에서 "청년세대의 일자리와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현재 도입된 것보다 더욱 강력한)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이어 장기적으로 "현재 입직자 대비 30년 차의 임금 수준이 평균 3.3배인, 연공제 임금 테이블의 기울이기를 낮춰 2배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임금 연공성이 가장 높은 나라다. 유럽연합(EU) 평균의 2배 수준이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현행 연공급제(호봉제)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호봉제는 나이가 벼슬이다. 반면 직무급제는 나이에 상관 없이 어떤 일을 얼마나 숙련되게 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정해진다. 청년 눈에 연공제는 불공정하고 직무급제는 공정하다. 현대차 노조는 "영국, 미국 등은 아예 정년차별 제도를 철폐했다. 정년연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한다. 맞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을 말할 뿐이다. 영국과 미국엔 호봉제도 없다는 게 또다른 절반의 진실이다.

30대인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페이스북에서 현대차 노조를 겨냥해 "정년을 아예 없애버리시고 더 오래 일하시라. 대신 소득은 좀 많이 양보하시라"고 꼬집었다.
툭 던진 말 같지만 사실 이게 정답이다.

나는 누군가 용감한 대선주자가 정년연장과 임금개혁을 맞교환하는 카드를 들고 나오길 바란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정년과 임금을 놓고 사회적 대토론만 이뤄져도 큰 소득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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