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굿바이! 메르켈… 16년 ‘엄마 리더십’, 독일에 자신감을 남기다 [글로벌 리포트]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9.26 17:52

수정 2021.09.26 17:52

동독에서 성장한 물리학자 출신
장황한 이념 대립보다 실리 집중
4번 임기 중 3차례 사민당과 손잡아
유럽 재정위기·난민문제 고비서도
합리적 리더십과 중재·협력 빛나
굿바이! 메르켈… 16년 ‘엄마 리더십’, 독일에 자신감을 남기다 [글로벌 리포트]
16년간 독일 총리직을 유지하면서 '엄마 리더십'을 보인 앙겔라 메르켈.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리더로 평가받아왔던 메르켈 총리가 16년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유럽 정계를 떠난다. 메르켈이 남긴 것은 포용력이 넘치는 독일의 자신감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2015년 8월 대대적인 난민 수용을 앞둔 의회 연설에서 국민들에게 겁먹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강력하다. 이런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11월 22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에서 첫 번째 총리 취임선서를 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AP뉴시스
지난 2005년 11월 22일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에서 첫 번째 총리 취임선서를 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 AP뉴시스
지난 2018년 6월 8일 캐나다 퀘벡의 라말베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책상을 짚은 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번째)과 대화하고 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AP뉴시스
지난 2018년 6월 8일 캐나다 퀘벡의 라말베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책상을 짚은 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 첫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옛 선거구인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를 총선 유세 지원차 방문, 말로우의 전통시장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옛 선거구인 독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를 총선 유세 지원차 방문, 말로우의 전통시장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P뉴시스

메르켈의 16년 임기가 끝나는 26일(현지시간)까지 그의 말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일자리는 난민 수용에도 불구하고 늘어났으며 경제는 금융위기를 넘어 성장했다. '무티(엄마)'라는 별명으로 독일 역사상 세 번째 장수 총리이자 첫 번째로 연임을 포기한 메르켈은 지난해 81%라는 경이적인 임기 말 지지율을 기록했다. 31년에 걸친 정치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후임에게 통합과 자립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동독 이공계 출신으로 4번 총리 연임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태어난 지 8주 만에 목사였던 아버지의 발령 때문에 가족과 함께 동독으로 이주했다. 동독에서 자란 그는 카를마르크스대학(현 라이프치히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해 양자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독 시절 공산당 가입을 거부했던 메르켈은 독일이 통일되던 1990년 우파 계열인 기독민주연합(기민련)에 입당, 같은 해 연방 하원의원에 올랐다. 그는 당시 당을 이끌던 헬무트 콜 총리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정부에 임용됐고 통일 독일의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원자력부 장관 등을 거쳐 2000년에 기민련 최초의 여성 대표로 선출됐다. 메르켈은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총리에 올라 16년간 독일을 이끌었다.

이공계 출신인 메르켈은 장황한 이념대립보다 실리에 집중했다. 그는 2005년 총선에서 기독사회연합(기사련)과 연합에도 불구하고 과반을 얻지 못하자 좌파 계열의 사회민주당(사민당)과 대연정을 꾸렸다. 기민·기사 연합이 좌파와 연정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었다. 메르켈은 올해까지 4차례 임기 가운데 2기를 제외한 3차례 임기에서 사민당과 손을 잡았고 탈원전과 친환경 정책, 난민 수용, 동성결혼 등 좌파 정책을 다수 받아들여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추구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학의 카트린 슈라이터 박사는 메르켈의 실용주의 리더십을 두고 미래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메르켈의 친좌파 행보는 우파의 이탈로 이어져 '독일을 위한 대안(AfD)' 같은 극우정당의 성장에 일조했다.

■금융위기와 난민정책 고비 넘겨

메르켈은 4차례나 총리를 연임하면서 크게 2가지 위기를 겪었다. 첫 번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찾아온 유럽의 재정위기였다. 메르켈은 2009년 균형재정법을 통해 정부 부채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 환경오염이 심한 노후차량 교체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 환경과 자동차 업계의 매출을 동시에 챙겼다.

그는 대대적 보육시스템 개혁으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높은 여성 고용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 결과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2005년 대비 34% 성장해 유럽연합(EU) 국가 중 가장 많이 성장했다. 동시에 메르켈은 재정위기로 그리스와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이 더 이상 빚을 못 갚겠다며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가운데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독일 내에서는 국민 세금을 빚쟁이 국가에 줄 수 없다는 반대가 커지자 유로존 차원의 구제금융기구를 구성, EU 붕괴 위험을 간신히 봉합했다.

2015년 지중해 난민 문제도 큰 고비였다. 메르켈은 EU로 밀려드는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며 2015년 기준으로 130만명의 난민 가운데 47만명을 수용했고 이후 3년에 걸쳐 140만명의 난민을 흡수했다. 메르켈은 난민 수용으로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계속해서 난민을 수용했고 결국 수용 규모를 줄이는 선에서 정치적 합의를 이뤘다. 독일의 일자리는 대규모 난민 수용에도 계속 늘어나 2005년 3600만개에서 2019년 4100만개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실업자 숫자는 320만명 줄었다.

그러나 메르켈 정부의 정책 속도가 말과 달리 너무 느리다는 주장도 있다. 일단 환경정책을 보면 독일 내 신차의 ㎞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여전히 9.9t으로 EU 평균(7.8t)보다 많으며 2019년 독일 전력생산의 친환경 에너지 비중은 23%에 불과했다. 디지털 산업 전환도 뒤떨어져 올해 기준 독일 기업들의 평균 팩스 기기 사용률은 아직도 43%에 달한다. 독일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교통과 교육, 통신 등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개선에 4500억유로(약 621조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낙후된 인프라는 결국 올여름 대규모 홍수 사태로 이어졌다.

■美·中 사이에서 자립 노리는 독일

메르켈 집권 16년 동안 독일 외교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자립'이라고 볼 수 있다. 메르켈은 취임 초기만 하더라도 다른 EU 정상과 달리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이라크전쟁을 옹호했고 2007년에는 텍사스주를 방문, 부시의 목장에서 함께 햄버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우호관계에 금이 간 원인은 금융위기였다. 메르켈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유럽의 재정위기로 번지자 "영미계 은행들과 월가의 로비세력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화를 냈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시기였던 2013년에는 미 정보당국이 메르켈을 포함, 각국 정상들의 통화를 염탐했다는 폭로가 터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메르켈이 겉으로는 오바마와 교류를 계속했지만 미국의 관심사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미국이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와 재정정책에 계속 참견하면서 불만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2017년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본격적으로 유럽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까지 거론했으며 메르켈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된다. 그는 2017년 연설에서 "우리가 타국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 유럽인들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이 찾은 디딤돌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2016년부터 독일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올랐으며 폭스바겐을 비롯한 주요 독일차 기업들의 최대 해외 시장 역시 중국이었다. 메르켈은 임기 중 13번이나 중국을 방문해 서방국가 정상 중 가장 많이 중국을 찾았다. 그는 2019년 뮌헨 안보포럼 연설에서 "중국은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국가"라며 "만약 중국이 독일과 우호관계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인구가 8000만명에 불과한 독일이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외에도 러시아와 천연가스관 사업으로 손을 잡고 프랑스와 EU 차원의 재무부·방위군 설립을 논의하며 미국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유럽을 주장했다. 올해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동맹 회복을 주장했으나 아무런 통보 없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을 빼내 현지 독일인 철수를 어렵게 만들었다.
관계자는 WSJ를 통해 바이든이 취임 직후 외국 정상 가운데 제일 먼저 메르켈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메르켈이 주말에 베를린 교외 관저에서 쉰다는 핑계로 전화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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