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앵커’의 불가벌적 수반행위

입력 2022.04.23 16:01수정 2022.04.23 16:02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앵커’의 불가벌적 수반행위

영화 ‘앵커’(감독 정지연)는 살인 사건과 해리성 인격장애 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대비되는 인물과 공간을 통해서 섬세하고 몽환적으로 표현하는 묘한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해리성 인격장애’는 주로 유아시절의 심각한 트라우마가 원인으로, 한 사람 안에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인격이 존재하여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정신질환입니다. 해리성 인격장애는 기억상실증처럼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해리성 인격장애가 있는 정세라(천우희 분)는 자신을 대신해서 앵커를 맡은 서승아(박지현 분)를 칼로 찔러 살해하려고 합니다. 정세라가 서승아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서승아의 찢긴 옷에 대한 재물손괴죄가 별도로 성립되지 않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 또는 여러 행위로 범죄의 수가 하나인 경우도 있지만 여러 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범죄의 수가 일죄인가 수죄인가는 형의 적용에 중대한 차이가 있고, 공소의 효력, 기판력의 범위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앵커’의 불가벌적 수반행위


일죄(一罪)에는 1개의 자연적 의미의 행위가 1개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여 당연히 일죄가 되는 본래적 의미의 일죄 이외에 법조경합 및 포괄일죄가 있습니다. 포괄일죄는 수개의 행위가 포괄적으로 1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여 일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법조경합이란 1개 또는 수개의 행위가 외관상 수개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한 구성요건이 다른 구성요건을 배척하여 일죄만 성립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법조경합은 1개의 행위에 대한 이중평가금지의 원칙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법조경합의 유형에는 특별관계, 보충관계, 택일관계, 흡수관계가 있습니다. 특별관계는 어떤 구성요건이 다른 구성요건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그 이외에 다른 특별한 표지까지 포함한 경우를 말합니다(예, 존속살인죄와 살인죄, 특수폭행죄와 폭행죄 등).

보충관계는 어떤 구성요건이 다른 구성요건의 적용이 없을 때 보충적으로만 적용되는 경우를 말합니다(예, 살인예비죄와 살인죄, 어떤 범죄의 방조범과 교사범 등). 택일관계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구성요건 중에서 어느 하나만 적용되는 경우를 말합니다(예, 절도죄와 횡령죄, 강도죄와 공갈죄 등).

흡수관계는 다른 구성요건의 불법과 책임내용이 다른 구성요건의 불법과 책임 내용을 포함하지만 특별관계나 보충관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흡수관계에는 불가벌적 수반행위와 불가벌적 사후행위가 있습니다.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앵커’의 불가벌적 수반행위

불가벌적 수반행위는 어떤 특정한 범죄행위에 필연적은 아니지만 일반적, 전형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제3의 경미한 위법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살해하면서 피해자의 옷을 찢거나 피를 묻히는 재물손괴, 사문서를 위조하면서 사문서 위조에 필요한 인장 위조, 구금된 사람이 죄수복을 입고 도주죄를 범하면서 죄수복을 절도하는 경우 등입니다.


불가벌적 사후행위는 어떤 범죄로 획득한 위법한 이익을 확보, 사용, 처분하는 사후행위가 별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그 불법이 이미 주된 범죄에 의해서 완전히 평가되었기 때문에 별도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절도범이 어떤 물건이나 현금을 훔쳐서 그 물건을 먹거나 현금을 소비하더라도 먹거나 소비한 행위는 불가벌적 사후행위에 해당하여 별도로 재물손괴죄 등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세라가 서승아를 칼로 살해하려는 과정에서 서승아의 옷을 칼로 찢고 피에 젖게 하는 손괴행위는 살인범죄에서 필연적은 아니지만 일반적, 전형적으로 결합되는 행위로서 살인죄보다 경미한 위법행위인 불가벌적 수반행위에 해당하여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앵커’의 불가벌적 수반행위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