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시험관 시술로 얻은 아들, 유전자가 엄마만 일치.."26년간 키웠는데"

문영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6 07:27

수정 2022.08.16 13:12


1996년 시험관 시술 당시 진료 기록. 뉴스1
1996년 시험관 시술 당시 진료 기록. 뉴스1


[파이낸셜뉴스] 26년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얻은 아들의 유전자가 남편과 일치하지 않은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돌연변이'라며 안심시켰던 당시 담당의사의 행동이다.

힘겹게 얻은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던 부부는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전 건강검진에서 깜짝 놀랐다. 부부의 혈액형은 'B형'이었는데 아들이 'A형'이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모두 B형이면 A형 아들이 나오기란 불가능하다.

A씨가 B교수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 A씨는 B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B교수는 묵묵부답이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A씨 제공) 뉴스1
A씨가 B교수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 A씨는 B교수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B교수는 묵묵부답이었다. (A씨 제공) 뉴스1

부부는 "어찌된 일이냐"며 대학병원에 문의했고, 담당의사인 B교수는 해외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기를 낳으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고 한다.

부부는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았다"며 "당시 너무 놀랐지만 의사가 그렇다고 하니 그 말을 믿었다. 아이가 절실했기 때문에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 부부는 성인이 된 아이에게 부모와 혈액형이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병원에 자료를 요청했다. 병원은 담당의사인 B교수가 퇴직했다며 다른 의사를 안내했다. 부부에 따르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의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당시 시술을 맡았던 의사와 직접 연락해 답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부부는 퇴직한 의사에게 연락을 했지만 메시지만 읽고 답은 없었다. 부부에 따르면 "몇년 전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시기까지는 주의 사항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시험관 시술에 관해 묻자 연락이 완전히 두절됐다"고 토로했다.

병원에서 혈액형 문제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부부는 지난달 말 아들의 유전자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친모는 맞지만 친부가 아니라는 답이 나왔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어 소송도 알아봤지만 공소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법률적 의견이 많았다.


부부는 "한국소비자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로펌 등 다 문의를 했는데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며 "20년 전 의사 말을 믿었던 게 너무 후회된다"고 한숨을 내밷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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