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번역은 먹자골목, 다음은 생선골목역입니다" [길 위에 장이 서다]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26 19:37

수정 2023.03.26 19:37

<7> 대전 중앙시장
시장 '이색 철도 테마' 중앙철도시장 별칭
중부권 최대 면적… 2000개 점포 운영중
매일 4만명 방문… 젊은층 유입도 증가세
현대화·주변 대전천 생태복구사업도 순항
1.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 가판대에서 손님들이 먹거리를 사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1. 대전 중앙시장 먹자골목 가판대에서 손님들이 먹거리를 사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2. 대전 중앙시장 주 입구 초입 왼쪽에 늘어선 주전부리 상점들.
2. 대전 중앙시장 주 입구 초입 왼쪽에 늘어선 주전부리 상점들.
3. 대전 중앙시장 중앙메가프라자 구역에 있는 헌책방에서 한 행인이 가게 앞에 쌓인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원준 기자
3. 대전 중앙시장 중앙메가프라자 구역에 있는 헌책방에서 한 행인이 가게 앞에 쌓인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원준 기자
4.1970년 대전 중앙시장 모습. 대전시 제공
4.1970년 대전 중앙시장 모습. 대전시 제공

【파이낸셜뉴스 대전=김원준 기자】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7일 오후 대전역 광장. 역을 등지고 대전 원도심 중심을 가르는 중앙로 왼편을 바라보면 건물 사이 아케이드 지붕 아래 '중앙시장'이라고 쓴 노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중부권 최대 전통시장인 대전 중앙시장이다.


시장 입구에선 냉동생선을 파는 노점상이 "떨이~ 떨이~"를 외치며 손님을 불러모은다. 도로가에는 대야 한가득 달래, 냉이 등 푸릇한 봄나물을 담아 파는 좌판도 열렸다. 호객하는 상인과 흥정하는 손님들이 뒤엉켜 시끌벅적하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자 과자 굽는 달달한 냄새와 고소한 기름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장터 본연의 모습이 펼쳐진다. 한데 늘어선 어물전과 정육점, 젓갈가게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겨온다. 걸음을 멈추자 젓갈집 주인이 '맛을 보라'며 젓갈 한 점을 권한다.

■문화관광형시장…'중앙철도시장' 별칭

입구에서 100여m쯤 들어왔을까. 사거리 아케이드 천장에 이정표가 걸려 있다. 이정표는 사방으로 양키거리, 홈커텐거리, 한복거리, 귀금속거리를 가리킨다. 왼쪽으로 발길을 돌려 수입물건을 파는 양키거리를 따라 걸으니 도로건너 맞은편에 '중앙철도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웬 철도시장?'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중앙시장은 지난 2015년 문화관광형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철도를 테마로 한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철도와 고락을 함께한 장터의 별칭인 셈이다. 이 때문에 시장 내 특화구역도 모두 간이역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 붙었다. 먹자골목역, 생선골목역, 양키역, 원단·홈커텐역 등등. 중앙철도시장 간판이 붙은 입구로 들어서면 커튼홈패션 상점과 주단 상점이 줄지어있다. 이곳에서는 커튼과 이불, 침구, 한복, 양복 등을 판매한다. 원단·홈커튼 상점들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시장의 남쪽 끝에 중앙메가프라자 구역이 나온다. 이곳엔 미싱가게와 주단상점, 골동품점, 중고 LP음반 판매점 등 다양한 품목의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시장 맨 가장자리에 있어 지금은 행인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1970~1980년대에는 이곳 옥상에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어 중앙시장 구역 중 가장 핫한 곳이었다는 게 상인들의 전언이다. 한때 이곳은 헌책방 거리로도 유명했지만 현재는 서너 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먹자통엔 호떡·빈대떡…노포 맛집 즐비

시장 구경에 허기질 때 쯤엔 먹자통으로 가면 된다. 맛집이 즐비한 이곳은 대전역 정반대편 은행동 쪽으로도 입구가 나 있다. 대전 원도심 상징인 목척교 옆 입구에 '먹자골목' 간판이 보인다. 아직 골목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음식 냄새가 발길을 잡아끈다.

골목 초입 호떡집에는 손님 열댓명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다. 골목 안쪽으로 완도상회, 영동상회, 부산상회 등등 전국 각지의 지명을 딴 상호가 정겹다. 쟁반 가득 쌓인 튀김과 순대, 김밥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노릇노릇 기름에 익어가는 빈대떡 등 먹거리 종류도 가지가지다.

생닭을 잡아 기름 솥에서 바삭하게 튀겨내는 '서울치킨'과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밥맛집인 '함경도집', TV예능 프로에 소개되며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북식 만두집 '개천식당' 등은 중앙시장을 대표하는 노포 맛집이다. 먹자골목외에도 시장 곳곳에는 순대와 잔치국수, 팥죽, 식혜 등을 파는 노점이 자리잡고 있다. 노점에서는 '착한 가격'에 반주 한 잔 하며 요기도 할 수 있다.

30년째 중앙시장 먹자골목을 지키며 커피와 식혜를 팔고 있는 김은주씨는 "아이가 다섯살 되던 해부터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모두 30대 중반이 됐다"면서 "예전에는 어르신 손님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신혼부부 등 젊은이들도 많아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단위시장 17곳에 도·소매점 2000여곳

중앙시장은 대전 동구 원동에 있다. 의류, 잡화, 요식업 등 20여개 품목 도·소매점과 점포 2000여곳이 영업 중이다. 단위 상인회만 17개로 이 단위시장을 하나로 묶어 활성화구역 상인회를 이루고 있다. 1970~1980년대 한참 번성하던 때는 점포 수가 4000개를 넘었다. 귀금속, 한복, 침구 등 혼수품을 주력으로 의류와 그릇, 식품, 생활잡화 등의 상점이 웨딩과 패션, 푸드 등으로 특화돼 있다. 30~5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가게도 즐비하다.

면적은 11만13627㎡(3만5000평)로, 대전역 왼쪽 맞은편 일대 전체가 중앙시장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중부권 최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대전 원도심 핵심 상권인 중앙로를 끼고 중구 은행동과 대전역이 맞닿아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길 건너 대전역 옆에는 또 다른 대형 전통시장인 역전시장이 성업 중이다. 중앙시장의 뿌리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이 행정단위로 기틀을 갖춘 때가 1914년 3월이니 그보다 3년이 앞선다. 중앙시장의 전신은 당시 대전에 거류하던 일본인이 세운 '대전어채시장'이다. 본래 위치는 동구 원동 일대, 옛 대전백화점 자리였다. 초창기에는 부산·마산·군산·목포·인천·원산 등지의 생선과 대전근교의 과일·채소가 판매됐다. 중앙시장이 생겨나면서 대전 최대장터인 인동시장이 점차 쇠퇴했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시장이 폐허가 됐지만 피란민들이 대전역 인근 원동에 몰리면서 일대 상권은 다시 살아났다. 피란민들은 의류제조업과 도·소매업 등에 종사하며 시장의 새로운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엔 전국 상권…고속道 개통에 축소

중앙시장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상권이 전국에 미쳤다. 충청권은 물론 전라도, 경북, 경기 일대 주단·포목·한복업계를 장악하다시피 했다. '빈털터리도 중앙시장에 들어오면 금세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과 돈이 모여들었다.

성장기로 접어들었던 1969년에는 시장을 휩쓴 대형화재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목조구조의 점포 360여동이 눈 깜짝할 새 화마에 휩쓸렸다. 이후 1980~2000년대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이어졌다. 1970년대 들어서 경부·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지방소매상들이 서울, 부산 등지와 직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중앙시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됐다. 소비행태 변화와 상인들의 고령화, 마케팅 부족에다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시장 기능이 조금은 약화됐다. 전성기에는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5만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4만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평일과 휴일 구분 없이 중앙시장은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근대문화유산 옛 산업은행도 볼거리

대전지역 근대문화유산인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건물도 중앙시장 구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이 건물에는 일제강점기 경제침탈의 아픈 역사가 배어 있다. 이곳은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한성은행이 1912년 대전지점을 개설한 자리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산업정책 지원 금융기관인 조선식산은행이 한성은행을 철거하고 1918년 10월 대전지점을 신축한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조선식산은행이 한국식산은행으로 개칭되고 다시 1954년 4월부터 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이용됐다. 1997년 산업은행 대전지점이 신도심인 대전 서구 둔산동으로 이전한 뒤 잠시 대전우체국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한 안경전문 기업이 사들여 활용하고 있다.

도면회 대전시사편찬위원(대전대 교수)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태동한 중앙시장은 충북과 충남, 경북 등 전국 각지의 도·소매상들이 모이던 대전을 상징하는 시장으로, 초창기부터 대단히 발전된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대전 동구청, 특화·현대화 사업 지원

중앙시장엔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 동구청 등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전통시장별 특화사업과 현대화사업 등이 진행되면서 중앙시장은 점차 쾌적하고 편리한 신개념 전통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시장과 이웃한 대전천에서 진행 중인 생태복원사업도 호재다.

최근 중앙시장은 행정안정부의 '전통시장 주변 편의시설 조성지원사업'에 선정됐다. 그간 전통시장 시설개선사업은 주로 아케이드와 주차장, 간판정비 등에 집중됐지만 이번에는 시장 유인형 시설이 설치된다.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고객 맞춤형 편의시설이다.
어린이 동반 부부와 젊은층을 불러들이기 위한 키즈카페와 책카페 등도 들어선다. 방문객이 시장 음식을 깨끗한 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세련된 고객편의 시설도 마련된다.
박황순 대전중앙시장 활성화구역 상인회장은 "전통시장 상인 중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이 많다 보니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서비스 도입 등 새로운 시도 과정에 많은 장벽이 있다"면서 "상인들의 의식변화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보다 깨끗하고 세련된 시장 만들기 위해 동구청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kwj579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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