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반도체가 불러온 '불장' 초반에 일찌감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매수해 둔 직장인 임병모씨(38·가명)는 최근 기분이 좋았다.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파란불도 생각보다 빨리 꺼졌고, 삼성전자 총파업 문제도 유보되면서 그의 계좌는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분은 부동산 뉴스를 확인하는 순간 금세 추락했다. 반도체 성과급 여파로 경기 화성 동탄에 20억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임씨가 거주하는 지역 역시 동탄이지만, 그는 전세 대출을 받아 거주 중인 세입자다.
'셔세권'이 만들어낸 새로운 부의 지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성과급이 수도권 남부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연봉 1억원 직원 기준 약 1억5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고, 삼성전자도 노사 합의에 따라 반도체(DS) 부문 임직원의 경우, 연봉 1억원 기준 최대 6억원(세전)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근무하는 30·40대를 중심으로 동탄 부동산 시장의 매수세가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핵심 키워드는 '셔세권'. 반도체 대기업 통근 셔틀버스 노선이 지나는 역세권을 뜻하는 신조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용인 수지와 성남 분당, 수원 영통, 화성 동탄 등 이른바 셔세권 아파트값 상승률은 수도권 평균을 웃돌았다. 특히 용인 수지(0.20→0.38%), 수원 영통(0.26%→0.35%), 화성 동탄(0.35%→0.46%) 등 반도체 사업장 접근성이 좋은 경기남부권은 반도체 경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름폭이 크게 확대됐다.
주주이자 세입자,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이런 상황 속에서 임씨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오를수록 주주인 임씨는 주가 상승의 과실을 일부 나눠 갖는다. 동시에 회사 직원들의 성과급은 커지고, 그 돈이 동탄·수지·분당 아파트로 흘러들어 집값을 밀어 올린다.
절대적 손실이 없어도 타인의 이득이 구조적으로 내 손실로 연결될 때,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단순한 시기심보다 훨씬 깊다. 더구나 세입자인 임씨에게 집값 상승은 수혜가 아니라 위협에 가깝다.
전세 계약 만기가 돌아오면 집주인은 더 높아진 시세를 근거로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 집주인이 매매를 결정할 경우, 계약 연장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난 20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동탄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2283건으로 전년 동기 1076건에 비해 112% 증가했고, 전세 매물은 점점 감소하는 분위기다.
"주식 팔아 집 살려했는데, 집값이 더 뛰네"…개미의 자산 배분 딜레마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성과급 보니까 출근할 맛도 안 난다", "내 10년치 연봉이 성과급이라니 상대적 박탈감 엄청나다", "월급 모아서 집 사라는 말이 허무해진다", "불장 좋았지만 역시 한국에선 아직 아파트가 답인 것 같다."
임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덮은 반응들에 공감하면서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집을 살 수도 없는 처지에 대해 고민이 깊다고 했다. 그는 "주식해서 번 돈을 보태 3~4년 내로 자가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집값 뛰는 속도가 훨씬 빠른 것 같다"고 한탄하면서도 주식 투자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수익률이 계속 증가하는 주식 계좌만이 그의 위안이었다.
'껄무새'가 되기 싫은데 오늘도 결국 "살 걸, 팔 걸, 버틸 걸…" 주식도, 부동산도, 재테크도 다들 나 빼고 잘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어려운 투자의 세계, 손뼉 치며 공감할 [개미의 세계]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함께 공유하고 싶은 투자 사연이 있는 개미들의 제보도 기다립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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