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국경도 나이도 지웠다"…그린닥터스 '온기 1년'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23 15:22

수정 2026.05.23 15:34

23일 오후 온병원에서 2026년 정기총회 개최..300여 회원 한자리
일요일마다 외국인·소외계층 등 1157명 무료진료 '따뜻한 밥퍼'도


2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온병원 15층 ONN홀에 열린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재단 제23회 정기총회'에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그린닥터스재단 제공
23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온병원 15층 ONN홀에 열린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재단 제23회 정기총회'에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그린닥터스재단 제공


[파이낸셜뉴스] "의사 가운을 입었을 때도, 앞치마를 둘렀을 때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소외된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질 때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토요일인 23일 오후 1시 부산 부산진구 온병원 15층 ONN홀, 객석을 가득 채운 300여 명의 눈시울이 동시에 붉어졌다.

지난 1년간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국내외 소외된 이웃들에게 인술(仁術)과 사랑을 베풀어온 국제의료봉사단체 '그린닥터스재단'의 2026년 정기총회 현장이다.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산해운항공그룹회장), 박수영 국회의원(부산 남구), 임영문 평화교회 담임목사, 정종훈 군립 울주병원장, 글로벌국제학교 오세련교장, (주)더모어컴퍼니 김을봉 회장, 이재향김치 박선국 대표 등 내외빈들의 축하 속에 열린 이날 총회는 단순한 사업 보고를 넘어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밝힌 봉사자들의 가슴 뭉클한 연대기였다.



부산상공회의소 양재생 회장은 축사를 통해 "요즘처럼 사회가 매우 어려울 때 사랑과 따뜻한 나눔을 적극 실천하는 그린닥터스야말로 대한민국을 빛내는 단체"라고 찬사를 보냈다.

■ 국경 없는 인술, 23년간 이어온 푸른 약속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한 그린닥터스 '글로벌메디케어(외국인국제진료소)'의 성과는 눈부셨다. 내과, 외과, 치과 등 각과 전문의들과 청소년·대학생 봉사단이 힘을 합쳐 지난 1년간 총 1157명의 소외계층 환자를 돌봤다.

우리 사회의 일원이지만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가정, 북향민들이 그린닥터스의 손길을 거쳐 건강을 되찾았다. 이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의 재난 현장과 취약 지역으로 날아간 '응급구호(생명) 키트'는 생사의 기로에 선 이들에게 실질적인 구원의 손길이 되었다.

■ "외롭지 않아요"… 매주 일요일을 채운 '행복한 밥상'

그린닥터스 온기는 의료의 돌봄 밖에서도 이어졌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온병원 6층 구내식당은 구수한 밥 냄새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부산진구 지역 어르신과 취약계층에게 '따뜻한 나눔의 한 끼'를 대접하는 '밥퍼' 봉사활동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상·하반기를 합쳐 약 1390만 원의 재원을 아낌없이 투입하며 외로운 이웃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 자원봉사자는 "일요일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식당을 찾으시던 어르신이 '이 밥 한 끼 덕분에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손을 꼭 잡아주실 때 눈물이 핑 돌았다"고 전했다.

"국경도 나이도 지웠다"…그린닥터스 '온기 1년'


■ 고사리손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세대를 잇는 나눔

그린닥터스의 가장 큰 힘은 청소년부터 시니어까지 전 세대가 참여하는 '이어달리기식' 봉사에 있었다.

주니어그린닥터스와 대학부 회원들은 요양병원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고, 매월 '온 아트' 프로그램을 통해 청사초롱, 복주머니, 꽃바구니를 만들어 호스피스 병동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발맞춰 페트병과 우유팩을 모으는 '탄소중립 캠페인'에도 앞장섰다.

백발의 시니어 봉사자들로 구성된 골드봉사단은 '봄맞이 온기나눔 바자회' 등을 직접 개최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등 나이가 무색할 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젊은이들의 귀감이 됐다.

■ "바른 복장과 시간 엄수는 단지 '신뢰'의 약속일 뿐"

그린닥터스 봉사자들이 이토록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비결은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봉사자의 마음가짐'에 있었다. "반바지나 치마 대신 긴 바지를,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고 양말을 꼭 챙겨 신는 것, 그리고 시작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대접받는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절'이자 '신뢰'"라는 이들의 철칙이 봉사의 품격을 높였다.

그린닥터스재단 정근 이사장(온병원그룹 원장·전 부산의대 안과 교수)은 "지난 1년 동안 봉사자들의 헌신 덕분에 부산은 물론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할 수 있었다"며 "2026년 올해에도 주니어, 대학부, 골드단이 모두 연합하여 계절별 맞춤 의료봉사와 국내외 구호 활동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근 이사장은 "1997년 작은 봉사단으로 시작한 우리가 세계적인 재난 현장을 누비고, 이제는 UN대학과 국제병원 설립을 바라보는 단체로 성장했다"면서 이 모든 기적은 회원 여러분의 '희망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강조하고, 2030년 개성병원 재개원과 글로벌 비전을 향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자고 강조했다.


무더위가 숨 막히게 하는 세상 속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치유한다"는 기적을 몸소 증명해낸 그린닥터스. 이들이 흘린 땀방울은 오늘 모인 300여 명의 가슴속에서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돼 피어나고 있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