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한국금융 알몸 드러낸 국민銀 비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25 17:27

수정 2013.11.25 17:27

국민은행이 잇단 잡음으로 금융당국의 동시다발적인 특검을 받게 됐다. 도쿄지점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 본점 직원들이 90억원을 횡령한 의혹, 부당이자 환급을 당국에 허위보고한 의혹 등이 대상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국민은행이 대주주인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 은행(BCC)의 영업정지 사실을 본사 경영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내부통제 시스템이 엉망이란 얘기다.

리딩뱅크를 자처하던 국민은행의 기강이 어쩌다 이렇게 무너졌을까. 타이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마 줄기 캐듯 나오는 최근의 비리는 지난 7월 최고경영진 교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임 어윤대 체제가 임영록 체제로 바뀌는 과정의 경영공백이 빚어낸 결과라는 관측이다.

사실 국민은행의 문제는 한국 금융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은 5년마다 정치바람을 탄다. 최고경영진은 잔여임기에 상관없이 정권이 바뀌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런 풍토 아래에서 극심한 줄서기 또는 반복적인 물갈이는 불가피한 결과다. 그러잖아도 국민은행은 합병 12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국민은행 출신과 주택은행 출신이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경영진의 잦은 교체와 내부 반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내부 비리는 척결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슷한 일이 5년마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는 것이다. 최상책은 관치 낙하산 금지다. 진짜 민간금융을 아는 실력자가 와서 내부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은행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선진은행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차선책은 새 경영진이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외부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영 승계 룰을 확립해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비자금·횡령·허위보고·보고누락은 한국 금융산업의 후진성을 잘 보여준다. 후진성을 극복하는 첫 단추는 금융을 정치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올봄 우리금융 민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민영화가 지연되면서 조직이 지나치게 정치화됐다"고 비판했다. 같은 논리가 이미 민영화된 KB금융지주에도 적용된다. KB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현재 64%가 넘는다. 정부가 간섭할 여지가 전혀 없다. 오히려 정부가 손을 뗄 때 KB금융 스스로 정치화의 굴레를 깨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27일 한국 금융의 위기상황을 타개할 금융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허브 코리아의 꿈은 한국 경제의 오랜 숙원이다.
그럼에도 별 진전이 없는 것은 금융을 아는 진취적인 경영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특검이 단순 비리 척결로 끝나선 안 된다.
근본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 유사한 비리가 주기적으로 반복될 공산이 크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