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의 돋보기] ‘천덕꾸러기’ 증권사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24 17:23

수정 2014.10.30 19:47

[김규성의 돋보기] ‘천덕꾸러기’ 증권사

'천덕꾸러기'까지는 아니라도 증권사 위상이 이렇게까지 추락했나 싶다.

증권사 매물이 쏟아지면서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신세 한탄이라도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동양, LIG투자증권이 매물로 나왔고 현대증권도 매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이엠투자, 이트레이드, 리딩투자,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 중소형사까지 범위를 넓히면 10여곳이 매각을 추진 중이다. 국내 증권사 6곳 중 1곳꼴이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상거래다.
장부가격에라도 팔면 잘 파는 것이다. 중소형사의 경우 호가가 장부가에 못 미치는 증권사도 많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가의 200% 이상으로 책정해 판 증권사 사례는 기억에도 희미한 일로 치부된다.

증권사는 한때 대기업이 탐내는 최고의 매물이었다. 우선 은행과 달리 금산분리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은행에 덜 휘둘리면서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증권사라는 통로를 갖는 것은 기업경영에서 대단한 무기였다.

삼성증권(삼성그룹), HMC투자증권(현대차그룹), SK증권(SK그룹), 한화투자증권(한화그룹) 등은 대기업 그룹에서 이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현대증권 매각 결정에서 보듯 증권업 라이선스 가치는 거의 폭락 수준이다. 유동성 위기 조짐을 보이는 현대그룹이 금융당국과 채권단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현대증권을 내놨다곤 하지만 대기업 그룹에서 증권사 위상 약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현대그룹이 금융시장에서 '현대'라는 브랜드 파워를 사실상 포기하는 수순이어서 충격은 더하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매각가격도 최대 경영권 프리미엄 50% 수준으로 '세일가격'이다.

은행 중심의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본시장은 발전 잠재력이 가장 큰 부문으로 꼽힌다. 당연히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인 증권사 또한 미래 전망이 밝아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금융비전'은 사실상 자본시장 발전방안이라고 할 정도다.

비전과 달리 현실은 정반대다. 증권업 수익성 악화 탓이 가장 크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적자의 늪에 헤매면서 수억원대라도 흑자를 낸 증권사가 뉴스의 중심이 될 정도다.

위탁매매수수료 수익에 의존한 안이한 증권사 영업전략이 위기를 부추겼다. 과거 코스피·코스닥지수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에 들고 났기 때문에 지수가 오르면 증권사 수익도 덩달아 좋아졌다. 최근에는 이 같은 방정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000선 안팎에서 움직이지만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과거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 증권사 고위임원은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꿨는데 증권사의 변신은 이제서야 시작됐다"고 했다.

비전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증권사의 소유 또는 인수가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사 인수합병(M&A) 촉진책'을 발표했지만 규제의 문턱을 추가로 낮춰야 한다.

은행과 다른 위험자본 공급 시장으로 자본시장의 기능을 키우는 것에 역점을 둬야 한다. 자본시장을 자본시장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척도인 영업용순자본(NCR) 비율 규제를 현행 150%에서 낮춰야 한다. 현재 적기시정조치 기준이 되는 NCR 비율은 150%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 등과 비교해서도 상대적으로 높다.

증권업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은행업과는 다르다.
리스크를 제어하는 수준에서 자본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처럼 50배까지는 끌어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레버리지 비율이 2배 수준에 머무는 한 국내 증권업 라이선스는 앞으로도 매력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쌓여있는 증권사 자기자본의 활용도를 높여주는 정책적 접근이 시급하다.

mirror@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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