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책임지는 사회 만들자](1부·3)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철밥통, ‘관피아’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27 17:22

수정 2014.05.27 17:22

[책임지는 사회 만들자](1부·3)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철밥통, ‘관피아’

안전행정부가 지난 2013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사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를 받아 퇴직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한 고위직 공직자는 1263명으로 집계됐다. 1362명을 심사해 이 중 92.7%가 통과했다. 이 중 100명 이상은 현직시절 감찰 업무를 담당하다 퇴직 이후에는 주요 기업체의 감사 자리를 싹쓸이 했다.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친 말로, 공무원들끼리 자리 보전을 위해 짬짜미하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대국민담화에서 민관유착과 관피아 문제 척결을 강조하기도 했다.

관피아들이 힘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재취업이다. 현직에 있을 때 산하단체나 관련 공기업들을 '적당히' 봐주면서 관리하다가, 퇴직 이후 그곳의 책임자로 가는 것이다. 자기가 나갈 자리이다보니 추상같은 관리 감독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이는 후임 공무원들에게도 그대로 관행처럼 이어지면서 각종 비리의 숙주 역할을 하게 된다.


[책임지는 사회 만들자](1부·3)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철밥통, ‘관피아’

■낙하산 철밥통에 솜방망이 처벌

매년 공직자나 정부 유관기관 인사 시즌이 되면 곳곳에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다. 정부가 입김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고위직에는 으레 관련 부처 출신의 퇴직 공무원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선박의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은 해양수산부 출신 관료들의 대표적인 재취업 자리다. 해수부의 경우 산하 및 유관기관 14곳 중 11개 기관장을 해수부 출신들이 차지하는 등 낙하산 인사는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이는 다른 부처들도 모두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공무원들은 산하 60여개에 달하는 협회로 나가는 게 관행이다. 산업부 퇴직공무원 유관기관 재취업 현황을 보면 2006년부터 올해 초까지 8년 동안 4급 이상 퇴직 공무원 336명 가운데 139명이 61개 산하기관에 재취업했다. 이들은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전력거래소 상임이사 등 주요 보직들을 차지했다.

또 국토부가 국회교통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국토부에서 퇴직한 4급 이상 공무원 314명 중 118명이 산하기관이나 유관단체에 취업했다. 금융권에서는 민간금융사와 유관기관에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들이 즐비하다.

금융권의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기관장 선출 방식은 대부분 민간에 자율로 맡겨져 있지만 실제는 대부분 위에서 누군가를 정해서 내려오는 게 관행"이라며 "지금은 여러 제약들이 생겼지만 한때 금융회사의 감사 자리는 모두 금융감독원 출신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민간 요직을 독식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건이 생긴 이후에도 자리를 굳건히 보전하는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고위직 공무원들은 대형 재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어느새 다시 돌아와 여전히 자리를 보전한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한국전력의 전력공급 중단으로 5시간 동안 대혼란이 벌어져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임하고 관련 고위직들이 줄줄이 면직되거나 해임됐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몇 달 뒤 다른 산하단체장에 임명되고, 지경부 내에 다른 요직으로 보직이 변경되는 등 복귀에 성공했다.

세월호 이전까지 최악의 여객선 침몰사고였던 서해 훼리호 때도 공무원들이 안전점검 일지를 허위로 작성하고, 사고 직후에는 과적 증거 서류를 파기하는 등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나 군산해운항만청 공무원 4명은 모두 집행유예를 받았으며 실형을 받은 사람은 없다.

성수대교 참사 이후에는 사고 위험 가능성을 담은 보고서를 조작한 공무원 1명만 금고형을 받았으며, 최근에 있었던 마우나오션리조트의 체육관 붕괴 사고에 대해서도 관련 공무원 기소는 없었다.

■공직자 재취업 제한 강화되나

퇴직공무원이 공공연하게 현직시절 관리하던 산하단체와 기관들에 취업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경우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독일은 공무원이 퇴직한 후 모든 영리활동에 대해 정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퇴직한 후 3년간은 현직시절의 업무 유관기관에 재취업을 못하도록 막고 있다. 프랑스는 5년간 유관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규정을 어길 때는 최대 2년까지 실형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은 퇴직관료의 재취업은 허용되지만 한 번만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곳을 옮겨다니지 못한다. 미국은 퇴직 공무원들의 재취업은 허용되지만 퇴직 전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 대정부 활동을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후속대책을 설명하는 대국민 담화에서 이런 관피아 문제를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담화에 따르면 앞으로 안전 감독이나 규제.인허가, 조달 업무 등과 직결되는 공직 유관기관의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 출신의 진입이 원천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은 현재보다 3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며 취업 제한 기간도 현재의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 밖에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할 경우 10년 동안 취업 기간과 직급 등을 공개하는 '취업 이력 공시제도'를 도입해 투명성을 크게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을 위해 칼을 뽑아들자 퇴직을 앞두고 있던 공무원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간 세워뒀던 인생설계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재취업 제한을 강화하게 되면서 사실상 퇴직 이후에 갈 만한 자리들이 거의 없어지게 된 것이나 진배없다"며 "앞으로 공무원 사회에서는 퇴직을 미루는 일들이 생겨 인사적체 등이 새로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일부 문제가 된 사례들이 있다고 해서 고위 공직자들의 재취업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의 경우 정부를 상대로 각종 로비 활동 등을 벌여야 하는데 고위 공직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민간협회 관계자는 "정부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의견들을 모아 정부에 전달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 공직자 출신들의 경험과 인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재취업 자체를 막기보다는 재취업 이후에 지속적인 감시와 감독 기능을 강화해 부정부패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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